작성일 : 10-05-09 15:46
보일러 만큼 뜨거운 열정의 소유자
 글쓴이 : happy
조회 : 696  
보일러 만큼 뜨거운 열정의 소유자


날씨가 추워지면서 새삼 보일러에 대한 고마움이 드는 계절이 다가왔다. 추운 겨울 보일러가 고장이라도 난다면 어떨까.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다.
보일러 기술 하나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있다. 바로 (주)한국야쿠르트의 성광호 명장이 그 주인공이다. 성 명장은 지난해 30년 동안 몸담아왔던 한국야쿠르트를 명퇴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회사에 출근을 한다. 회사 측에 배려로 명퇴이후에도 복귀하여 후학들에게 보일러 기술 전수에 나선 것이다.
명장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가난, 고졸 학력, 아홉개의 손가락 등 환경적, 신체적 어려움이 있었지만 보일러만큼이나 뜨거운 열정앞에서 그의 핸디캡은 더 이상 핸디캡이 아니었다.

(주)한국야쿠르트 성광호 명장




“손가락이 아홉 개나 있는 걸요”

2002년 보일러 명장, 2004년 보일러기능장, 2008년 기능한국인 등 기술인으로서 최고의 상을 모두 거머쥔 성광호 명장. 지난 1978년 한국야쿠르트 입사이후 단 한 번도 직장을 옮기지 않고 30년을 한결같이 보일러 에너지절감기술개발에 매진해왔다.
그는 입사 2년 만에 최단기간 모범근로자상을 수상한 것에 이어 남들은 한 번도 받기 힘든 최우수 제안상을 3번이나 수상하는 열성을 보였다.
성 명장의 기술에 대한 열정은 회사 내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90년 동력자원부 장관 표창에 이어, 98년 환경부장관 표창, 2003년과 2008년 노동부장관 표창, 2005년에는 산업포장을 받았다. 회사내에서 그처럼 많은 포상을 받은 직원은 전무하다고 한다.
하지만 성 명장이 기능인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여러 ‘핸디캡’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를 따라다니던 지독한 가난과, 고졸이라는 학력, 그리고 아홉 개의 손가락이 그것이다. 어린시절 오른손 검지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가 있었는데 제대로 병원한번 가보지 못한채 손가락을 잃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홉 개의 손가락으로 어떻게 명장이 되었냐고 물어요. 그럴 때면 저는 이렇게 말하죠.” “아직도 저에겐 손가락이 아홉 개씩이나 있지 않습니까? 살아오면서 제가 원하는 기술을 익히는데 이 아홉 개 손가락이면 충분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핸디캡으로 인해 결코 비관하거나 포기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극복하게 위해 남들보다 두 세배 더 노력했다.
사실, 아홉 개의 손가락 덕분에 보일러 명장이 될 수 있었다고 떨어놓는다.
만일 그에게 열손가락이 다 있었다면 그는 대통령 경호원이나 경찰이 되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손가락이 하나 없다는 이유로 경찰시험에서 번번이 탈락했던 것이다.


오늘의 그를 만들어준 한국야쿠르트

전남 해남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성 명장이 보일러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손가락 때문에 경찰의 꿈을 접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면서 부터이다.
배운 게 운동밖에 없던 그는 태권도사범으로 일하면서 잠잘 곳이 없어 태권도장 아래층에 있는 목욕탕에서 잠을 자면서 목욕탕의 보일러 관리자와 친분을 쌓으면서 보일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보일러 기술을 익히면 먹고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보일러 관련 자격증을 따기 시작한다. 그 자격증을 가지고 그는 지난 75년 보일러관리장으로 취직하면서 보일러 기술자의 길에 발을 들여놓는다.
하지만 어깨 너머로 배운 기술은 실전에서는 ‘무용지물’임을 깨달으면서 보일러의 기초부터 공부해 보자는 생각으로 기관장 일을 그만두고 보일러 설치와 난방 배관 회사에 취직한다.
당시만 해도 기술을 배우는 조건으로 식사만 제공하고 월급은 주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는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일념으로 배고픔을 감수했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니 보일러에대해 자심감이 생겼다.
보통 보일러 하면 가정용 보일러를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그는 공장에서 사용되는 산업용보일러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가 한국야쿠르트에 입사하게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한국야쿠르트는 오늘의 그를 만들어준 회사이다.
회사에 입사해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했지만 인문계 고교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번번이 승진에서 탈락되었다.
12년만에 첫 승진을 했으니 그간의 겪은 어려움을 이루말할 수 없었지만 회사 일에는 그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직장 생활내내 ‘약삭빠른 토끼가 되는 것 보다 꾸준한 거북이가 되자’는 좌우명으로 고집스레 한 우물을 팠다.
그 결과 그는 현재 ‘기성’의 자리까지 진급했다. ‘기성’은 기술자로서의 최고라는 칭호이다.
그에게 있어서 직장은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곳이 아니었다. 그를 변화시켜 발전시키고 성취감과 보람을 얻게 한 삶의 터전이었다.
“독일에서는 마스터, 일본에서는 명공이라는 이름으로 기술자들을 대우해 주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기능인을 하찮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할 때가 많아요.” 성 명장은 기능인의 위상이 높아져야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도 많아질 것이라고 덧붙인다.



열관리자의 기도

“숱한 직업 가운데 나에게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열관리 임무를 택하는 지혜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이 나라에서 한 방울의 기름이라도 더 아낄 수 있는 슬기와 지혜를 주십시오.”
그는 ‘열관리자의 기도문’이라는 제목의 기도문을 작성하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이 기도문을 꺼내보면서 스스로를 단련했다.
에너지절감을 향한 그의 남다른 의지를 남달랐다. 명장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가 개발한 기술들은 모두 에너지절감과 관련된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7번째로 석유를 많이 사용하는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에너지절약기술을 개발하여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것이야말로 애국하는 길이고 사명입니다.”
성 명장은 우선 산업용 보일러의 품질개선을 위해 급수탱크를 새롭게 고안했다. 보일러에서 발생하는 증기의 응축수를 효율적으로 재사용할 수 있다면 상당한 에너지 절감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증기는 열을 전달하고 나면 물이 되는데 이 물은 온도도 높을 뿐 아니라 증류수와 같아서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이와 같은 응축수는 전체 증기량의 70-80%가 회수되는데 배관에서 발생하는 이물질과 함께 급수탱크로 들어간다. 이 때 일부 보충수와 이물질은 비중에 의해 아래로 가라앉고 뜨거운 물은 위로 올라간다. 이 물이 그대로 보일러에 들어갈 경우 기능상의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달 동안 각종 실험을 거듭한 끝에 마침 지난 96년 이를 해결 할 수 있는 장치개발에 성공했다.
급수탱크 안에 칸막이를 설치하여 한쪽에 찬물과 녹물 등 이물질을 침전시키고 급수탱크 상부에 있는 높은 온도의 깨끗한 물을 다른 쪽으로 이동시켜 양질의 용수를 보일러에 공급하는 장치를 개발한 것이다.
이 장치는 보일러의 항상 높은 온도의 깨끗한 물을 공급함으로써 안전운전, 에너지절감, 제품의 품질 향상 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외에도 응축수를 배출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재증발 증기를 회수하는 장치, 스팀트랩의 점검 장치 등을 개발했다.
이런 기술들은 모두 에너지절감과 생산성향상, 나아가 국가경쟁력 제고라는 일석삼조의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회봉사도 앞장서

무엇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성 명장.
이웃사랑을 향한 그의 가슴은 보일러만큼이나 훈훈하다.
그는 바쁜 일정에도 틈날 때 마다 사회봉사에 나섰다. 벌써 수년째 천안의 등대의 집과 논산의 호산나교화, 강원도의 밥상공동체를 후원해오고 있다.
산간벽지에 책보내기 운동도 동참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보일러기술을 활용하는 봉사활동이라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복지시설에 보일러를 수리해주는 봉사를 벌써 20년째 해오고 있다.
성 명장은 앞으로도 자신이 가진 기술로 보다 많은 이들에게 나눔의 온기를 전함으로써 보일러처럼 훈훈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걸어온 길
1951년 전남 해남 출생.
해남중학교, 해남고등학교 졸업.
1978년 (주)한국야쿠르트 입사
1980년 최단기간 모범근로자상 수상
1989년 최우수사원상
93,94,96년 최초, 최다 최우수 제안상.
2002년 대한민국 명장
2004년 보일러 기능장
2008년 기능한국인 선정 /
(주)야쿠르트 정년퇴임.
현재 (주)야크루트 생산기획팀 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