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01-15 13:48
[역전의 CEO들] [4·끝] 3차례 큰시련… 과감한 투자로 이겨내
 글쓴이 :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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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 CEO들] [4·끝] 3차례 큰시련… 과감한 투자로 이겨내

  • 입력 : 2010.01.15 03:16 / 수정 : 2010.01.15 08:46

초정밀 플라스틱 부품업체 KJ프리텍 홍준기 사장
개발비 50억 반사형 LCD 양산 석달 만에 '휴지통'으로…
휴대폰 핵심부품 BLU 개발 세계적 경쟁력 인정 받아

경기도 화성시에 본사를 둔 KJ프리텍(대표이사 홍준기)은 초정밀 플라스틱 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이다. 휴대폰 등에 핵심부품으로 쓰이는 BLU(Back Light Unit·액정 디스플레이 뒤쪽에 빛을 비춰 화면을 밝히는 방식) 등의 초정밀 부품을 LG전자 등 국내업체뿐 아니라 엡손·샤프 등 세계 유수의 LCD업체에도 공급하고 있다.

BLU는 10여년 전만 해도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전량 일본에서 수입해 온 휴대폰 핵심부품이다. 홍준기 사장은 "작년 샤프·엡손 등에서 '우리에게도 BLU를 공급해달라'고 요청해와, 안정적 물량 공급을 약속받은 뒤 수출을 시작했다"며 "전량 수입에 의존해온 BLU를 이제 일본에 재수출하게 된 데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1994년, 공단마다 넘쳐나는 그저 그런 금형가공업체 중 하나로 출발한 KJ프리텍은 10여년간의 과감한 투자 덕분에 중소기업 중 드물게 금형(틀 제작)→사출(플라스틱 부품 생산)→조립 등의 일관 생산 라인을 구축, 초정밀 부품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었다. 기술력 역시 금형에서 출발해 도광학(導光學), 초정밀코팅 등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이 회사의 2008년 매출은 1000억원. 8년 전인 2000년의 10억원에 비해 무려 100배 성장했다. 이 기간 동안 연평균 61.6%의 고속성장을 누려온 셈이다. 몇 차례 시련도 이 회사를 쓰러뜨리지 못했으며, 오히려 그 시련을 담금질 삼아 한 단계 도약하는 기회로 활용했다.

KJ프리텍의 홍준기 사장(사진 맨 오른쪽)은“중소기업이 살아남으려면 투자를 많이 해 세계가 알아주는 원천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사장이 연구개발실 직원들과 함께 휴대폰 핵심부품의 하나인 BLU 시제품을 들여다보고 있다./화성=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3차례 위기를 '기회'로 활용

1994년 안양의 한 지하실에서 벤처기업으로 출발한 KJ프리텍의 첫 대박은 1998년 LG전자와의 인연에서 출발했다. 개인용 컴퓨터, DVD 플레이어 등의 구동 부품 일부를 철 소재에서 플라스틱으로 교체한 것이 계기였다. 홍준기 사장은 "플라스틱 소재는 가볍고, 철 소재와 달리 까다로운 후(後)가공이 필요없기 때문에 무엇보다 대량생산이 가능해, 원가절감 차원에서도 획기적인 기술혁신"이라고 말했다. 당시 일본을 비롯해 어느 나라도 해보지 못한 시도였다.

그러나 기회는 위기를 가져왔다. KJ프리텍의 기술력을 눈여겨본 삼성전자가 휴대폰에 들어가는 반사형 LCD(Front Light 방식·자연광을 이용해 휴대폰 화면을 밝혀주는 방식) 기판 개발을 제의해왔다. 이 기술 개발을 완료하기까지는 3년이 걸렸고, 50억원이 넘는 개발비가 들었다. 본사도 삼성전자 기흥공장 근처로 옮겼다. 그러나 이 기술은 양산 석달 만에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했다. 반사형 LCD 방식을 택한 일본 휴대폰이 대량 리콜에 들어가자, 삼성측에서 곧바로 BLU로 휴대폰 광학 방식을 바꾼 것이다. KJ프리텍은 개발비와 본사 이전비 등 빚만 떠안게 된 것이다.

"아, 이런 게 중소기업의 한계구나, 정말 앞이 캄캄해지더군요.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습니다. 빚은 많이 졌지만 남들 못 가진 기술력을 갖게 됐으니까요."

반사형 LCD 개발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번에는 BLU 개발에 다시 들어갔다. 광학 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플라스틱 소재에 초정밀 가공기술을 적용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었다. 개발 완료 후, 이번에는 LG 휴대폰에 LCD를 공급하는 LG이노텍과 손을 잡았다. LG측의 요청대로 중국 옌타이에 대규모 공장도 지었다. 그러나 이 공장 역시 완공 후 첫 6개월은 LG측의 사정으로 거의 라인을 돌리지 못했다. 유동성 위기가 코앞에 다가왔다. 다행히 반년 후에는 공장이 정상 가동돼 자금에 숨통이 트였다. 세 번째 위기는 KIKO(통화옵션파생상품)였다. 2008년 하반기부터 국제금융 위기로 달러 값이 폭락하자 1년치 이익 규모가 넘는 130억원을 KIKO 때문에 날렸다.

지하실 벤처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몇 차례 시련으로 '맷집'을 기른 KJ프리텍은 작년부터는 또다시 과감한 투자에 나섰다. 어려울수록 투자만이 살길이라는 판단에서다. 중국 현지공장을 증설하고, 제품 공급선도 국내 대기업 위주에서 벗어나 해외로 넓혔다. LCD 기술의 원조인 일본 업체들이 "우리에게도 제품을 달라"며 제발로 찾아온 것도 작년부터였다. 일찍부터 일관 생산 라인을 갖춰 일본의 어느 업체보다 빠른 납기를 보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홍 사장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세계가 알아주는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한발 앞선 투자만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