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12-27 17:47
[문화비전] 막걸리를 전세계에 대접하는 길
 글쓴이 :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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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전] 막걸리를 전세계에 대접하는 길

앤드루 새먼·더타임스지 서울특파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09.12.25 23:16

앤드루 새먼·더타임스지 서울특파원

요즘 막걸리 르네상스다
이 술은 '쌀 와인'이 아니라 차라리 '쌀 맥주'에 가깝다
가격 경쟁력도 있다
새로운 마케팅과 브랜드를 소프트 파워로 담아낼 때다

나는 현재진행형으로 굴러가는 막걸리 르네상스를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오랫동안 술을 사랑해온 사람으로서, 나는 특히 소주와 라이벌 관계인 술이 득세하는 것을 반기는 바다. 나는 증류주가 싫다.

스코틀랜드나 프랑스 같은 나라들은 자기네 전통 술을 성공적으로 마케팅했다. 막걸리로 개종하는 일본인들도 늘고 있다. 막걸리가 세계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마케팅의 '5P 원칙'을 통해 이 문제를 전략적으로 접근해보자.

첫 항목은 '상품(product)'이다. 막걸리라는 이름은 외국인이 발음하기 힘들고 스펠링(makgeolli)도 끔찍이 복잡하다. 한국인들은 막걸리를 '쌀 와인(rice wine)'이라고 번역하는데, 이건 맞지 않는 말이다. 유럽에서 와인은 '발효된 과실주'를 뜻하는데, 막걸리는 곡물을 양조한 술이고 유럽에선 이런 술을 '맥주(beers)'로 통칭한다. 서양 사람들에게 막걸리를 판매하려면 '쌀 맥주'라고 하는 편이 낫다. 그래야 막걸리의 역사, 마시는 방법, 알코올 농도 등을 설명하기도 쉬워진다. 그 옛날의 유럽 맥주와 마찬가지로, 막걸리 역시 농민들이 들판에서 일하다 즐기는 술이었다. 막걸리는 와인처럼 홀짝홀짝 마시는 술이 아니라 맥주와 마찬가지로 벌컥벌컥 들이켜는 술이다. 알코올 농도도 맥주와 비슷하다.

둘째 항목은 '가격(pricing)'이다. 막걸리는 저렴한 술이다. 가난한 애주가인 나는 이 점에 대해 아무 불만이 없는 바이다. 19세기 이전까지 유럽에서는 문화가 위에서 아래로 전파됐다. 귀족 문화가 상공업자들에게 확대되는 식이다. 미국이 패권을 잡은 뒤 이 패턴이 전복됐다. 패션, 스포츠, 외식 문화, 대중음악과 영화와 TV 프로그램들이 아래쪽에서 힘을 얻어 위쪽까지 사로잡았다. 따라서 막걸리에 관한 한 저가(低價) 전략은 별 문제가 없다고 본다. 그래도 막걸리를 꼭 그렇게 세제 용기처럼 생긴 플라스틱 병에 담아서 팔아야 하는지는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다.

그 다음은 '홍보(promotion)'다.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이 막걸리를 주목하게 만들 수 있을까? 막걸리의 역사, 음미 방법, 어울리는 안주, 생산자, 판매자 등에 대한 재미난 정보를 모은 글로벌 웹사이트를 만들면 유용할 것이다. 영화나 TV 프로그램 소품으로 막걸리를 등장시켜서 바이러스처럼 서서히 소비자들에게 침투시키는 것도 비용 대비 효과가 큰 마케팅 전략이다. 뜨겁게 데우거나 차갑게 식혀서 마시는 사케, 라임과 소금을 곁들여 마시는 테킬라처럼, 독특한 방식으로 마시는 술도 소비자들의 흥미를 끈다.

'브랜드'를 만드는 것도 좋다. 세계 최초의 등록상표는 영국 술 배스에일(Bass ale) 병에 붙은 빨간 삼각형 그림이었다. 배스에일은 맥주의 일종으로, 19세기에 세계 곳곳에 수출됐다. 구한말 한국인들을 찍은 이탈리아계 영국 사진가 펠릭스 비토(Beato)의 사진에서도 배스에일 병을 든 조선인이 등장할 정도다.

그 다음 요소는 '사람(people)'이다. 누가 막걸리를 만드나? 소규모 자영업자들이다. 프랑스의 포도밭이나 벨기에의 맥주 양조장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소규모라는 점은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막걸리 제조업자들도 이 같은 강점을 살려 마케팅할 수 있을까? 막걸리가 '한국 술'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부가가치를 높이면서 지역 제조업자까지 보호하려면 '특정 술의 고향'이라는 명성이 필요하다. 프랑스가 샴페인을 자랑하고 멕시코가 테킬라를 자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마 지막 항목은 '배치(placement)'이다. 어떤 방식으로, 또 누구에게 판매할 것인가? 한식당에서 판매하는 것 말고, 수퍼마켓과 주류도매상을 통해서도 판매할 수 있을까? 저온살균한 뒤, 바에서 큼직한 술통(barrel)에 저장해두고 팔 수 있을까? 국내 막걸리 축제와 시장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프랑스 업자들이 자기네 상품을 뽐내는 다채로운 방식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어쨌거나 지금처럼 막걸리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단계에서는 마케팅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술은 유럽에서 비롯된 와인과 맥주다. 지난 세월 서구가 향유한 우월적인 지위를 반영하는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멕시코가 세계 술 시장에 성공적으로 파고들었다는 점을 기억하라. 한·중·일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세계 경제의 나침반이 동쪽으로 기울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이 지역 국가들이 '하드 파워(hard power·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소프트 파워(soft power·문화적 저력)'로 자국 홍보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할 때다. 막걸리 홍보도 그런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 한국의 막걸리 마케팅 담당자들이여! 글로벌하게, 그리고 창의적으로 생각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