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12-25 16:49
공학자가 미국물리학회 석학된 까닭은
 글쓴이 :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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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자가 미국물리학회 석학된 까닭은?
안도열 양자정보처리연구단장
“창의연구단 시작하고부터 우리나라 학자들도 외국학회 석학으로 많이 선정되는 것 같아요. 그만큼 장기간의 연구에 비교적 크게 투자하니까 좋은 성과도 나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석학회원이라고 특별하게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향후에 연구 활동에 힘이 생기겠죠?”

미국물리학회(APS)가 한국의 공학자를 석학회원으로 선정했다. 주인공은 안도열 서울시립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우리석좌교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정회원 중 0.5% 이내의 인원만 석학회원으로 임명한다는 미국물리학회가 한국의 공학자를 석학회원으로 뽑은 이유가 무엇일까.

답은 안 박사의 연구 분야가 ‘반도체 방식의 양자컴퓨터’라는 데 있다. 양자컴퓨터는 대용량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차세대 컴퓨터로 전자공학에 속하지만, 양자의 원리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물리학과 맞닿아 있다. 즉 전자공학과 물리학의 융합분야인 것이다.

“1988년에 냈던 논문이니까 20년이 됐네요. 사람들도 약간의 스트레스를 주면 일을 더 잘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반도체도 같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한 것인데 당시의 기술적 난제였던 반도체의 발광효율을 높이는 데 이론적 기초를 마련하게 됐습니다.”

안 교수는 박사 졸업 논문으로 ‘양자우물 레이저 이론과 양자정보통신’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써 전자공학과 물리학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이 논문은 지금까지 500회 이상 꾸준히 인용되며 이 분야 고전으로 널리 알려졌다. 2005년에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전기전자공학회(IEEE)의 석학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논문의 내용은 간단하다. 서로 다른 반도체를 접합시켜 반도체의 발광 효율을 2배 이상 개선시키는 것이다. 이 내용은 현재 DVD기기 등 대용량 광저장 매체의 핵심기술이며, LED(발광다이오드) 기술에도 응용되고 있다.

4년 뒤 미국물리학회도 이 논문과 안 교수에 주목했다. 특히 그가 양자컴퓨터 등 미래 유망 기술을 개척해 이 분야의 연구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점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렸다.

공학자를 위한 ‘양자물리 교과서’ 펴내…

“2005년에 IEEE 석학회원으로 선정되고 나니까 교과서를 써 보라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공학자를 위한 양자물리’인데요. 앞으로는 공학자들에게도 물리학 등 기초과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교과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3년 동안 작업했고 내년이면 책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안 교수는 반도체 기술을 양자컴퓨터에 적용시키는 연구를 하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양자수(큐비트)로 정보를 처리하는데, 양자 입자가 업(up)상태일 때는 1로, 다운(down) 상태일 때는 0으로 인식한다. 디지털 데이터가 0과 1로 처리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그런데 양자 세계에서는 0과 1이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다. 따라서 양자컴퓨터는 동시에 여러 개의 연산을 할 수 있고, 양자수가 많아질수록 계산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진다. 반도체는 이런 양자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게 설계해야 한다.

결국 양자컴퓨터는 양자의 원리를 이해해야 개발할 수 있다. 공대생들도 물리학 등 기초학문을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안 교수는 공학자를 위한 교과서를 한 권 펴내게 됐다. 미국 3대 출판사 가운데 하나인 와일리 출판사(Wiley-Interscience)의 권유로 3년 동안 대구가톨릭대의 박승환 교수와 공동으로 작업한 작품이다.

“대학교 4학년 학생이나 대학원 학년 정도 되는 학생이 보면 좋을 것입니다. 물리학적 지식이 없더라도 대학 수학 2학년 정도의 실력이면 따라올 수 있도록 쉽게 쓴 실용서입니다.”

안 교수는 교과서 내용을 주로 반도체나 LED 등 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사례로 구성했다. 또 양자컴퓨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 공대생들의 이해를 도왔다. 이 책은 내년 3월 출간과 동시에 약 1만부가 전 세계 대학 도서관에 비치될 예정이며, 이 밖에도 교구재로 채택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접하게 될 것이다.

안 교수는 “공부하기 싫어하는 물리학과 학생도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책을 썼다”며 “앞으로는 물리학도 순수 분야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공학과 접목돼 다양하게 활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창의·도약연구단처럼 지속성 있는 연구과제 많아져야

한편 안 교수는 창의연구단으로 선정된 덕을 많이 봤다고 밝혔다. 양자정보처리연구단은 1998년 창의연구단에 선정된 2007년 도약사업에 다시 선정돼 지원을 받고 있다.

안 교수는 “창의연구단처럼 장기간의 연구에 큰 금액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어 우리나라 기초과학이 전반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최근 미국물리학회 석학회원으로 선정되는 학자들 중에 창의연구단장이 많다는 점만 보더라도 이 사업의 성과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잘 하는 연구는 계속해서 진행할 수 있도록 도약연구단 이후의 과정이 마련되거나 도약연구단을 연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글/박태진 동아사이언스 기자 tmt1984@donga.com (2009년 12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