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5-16 11:35
[원로에게 듣는다③] 최남석 전 LG화학 기술연구원장 , 최남석 원장 "연구소, 최소 10년 후 살길 개척해야"
 글쓴이 :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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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현 정부의 출범 2주년을 맞았다. 한국의 현실은 산업, 경제, 일자리, 성장 동력 등 여러 지표에서 빨간불이 켜지며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무엇보다 과학선진국들이 인공지능, 자율차, 우주탐사 등 미래 과학기술 선점을 위해 질주하고 있는데 비해 한국은 과학기술 기반의 미래 동력을 만들어 내지 못하며 방향성을 잃고 있는 상태다. 본지는 과학계 원로와의 인터뷰(또는 가상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미래를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 연구자와 정부의 역할을 들어 보았다.<편집자 편지>

'Mr. What's new?'
최남석 前 LG화학 기술연구원장을 대신하는 별명이다. 그는 원장 재임 시기 매일 아침 연구소를 순회하며 만나는 구성원마다 "What's new?"라고 인사를 건넸다. 연구소에 재임했던 15년간 한결같았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었다. 'What's new?'는 그의 별명이 됐다.

그는 왜 이처럼 같은 인사를 반복했을까. 단순히 잘 지내냐는 안부였을까? 아니다. 하룻밤 사이라도 재밌는 연구 결과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나왔는지 묻는 말이었다. 그는 이 짧은 말을 통해 연구원들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추구해야 함을 늘 자극했다. 

최남석 전 원장은 부지런히 배우고 도전하는 직원에게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나, 안주하는 사람에게는 엄격하게 대했다. 또, 젊은이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의지도 가르쳤다. 자신 역시 새로운 분야를 찾아 공부했다. <사진=대덕넷DB >최남석 전 원장은 부지런히 배우고 도전하는 직원에게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나, 안주하는 사람에게는 엄격하게 대했다. 또, 젊은이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의지도 가르쳤다. 자신 역시 새로운 분야를 찾아 공부했다. <사진=대덕넷DB>

후배들은 이 한마디에 매일 긴장됐다고 고백한다. 처음에는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점차 'What's new'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최 박사가 당부한 도전 정신은 농약·화학제품·화장품 등을 만들던 전통 화학 회사인 LG화학이 생명과학·소재·정밀화학 등 신성장 동력을 찾아가는 데 밑거름이 됐다. 그의 부드럽지만 촌철살인의 질문이 구성원을 항상 깨어있게 만드는 촉매가 된 셈이다.

'원로에게 듣는다' 3편은 최남석 前 LG화학 기술연구원장의 회고록 '비행기에는 백미러가 없다'를 통해 민간 연구소가 선진국형 연구 체제를 갖추는 데 기여한 성장 동력과 연구소 운영 철학을 살펴본다.

◆ "어떻게 월드 클래스 연구소 만들지 고민"···시대 흐름 읽다

최 원장의 운영 철학은 분명했다. 미래를 내다보며 새로운 분야를 지속해서 개척하고 선점해 나가는 것이다. LG 측의 든든한 신뢰 아래 15년간 기술연구원장 직을 수행한 점도 그가 소신 있게 연구소를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그는 "기업 연구소는 최소한 10년 후에 기업이 먹고살 것을 마련해야 한다는 책임 아래, 가야 할 분야를 고민하고 개척했다. 다른 기업보다 먼저 새로운 분야를 선점해야 한다는 철칙으로 연구소를 이끌었다"고 강조했다.

1995년 LG화학 부사장 겸 기술연구원장 직을 퇴임하며 발표한 고별사에서도 최 원장은 "'어떻게 하면 우리 연구소를 월드 클래스(World Class) 연구소로 만들까'라는 변하지 않는 신념 하나로 연구소를 운영해 왔다"며 "항상 미래지향적 사고로 연구소를 운영하려 노력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그 과정에 대해 한 점의 후회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시기를 3단계로 나누고 '연구개발 10개년 계획'을 수립해 추진했다. 제1기에 모방형 R&D 전략으로 기본 체제를 잡아가며 기존 공정을 개선, 제2기에는 독자적인 연구를 구축, 제3기에는 연구소를 국제적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계획이었다.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전략으로 미래를 준비해 나갔다.

최 원장이 염두에 둔 연구소 장기계획 중 하나는 '유전공학'. 당시 우리나라는 유전공학 정보는 물론이고 전문 인력이 부족한 신약 불모지였다. 고분자화학을 전공한 최 박사도 유전공학 연구를 책임지는 게 막막했지만, 주저하지 않았다.

"유전공학은 부존자원이 빈약한 국내에서 비교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 집약 산업으로서 제3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유망 산업이었죠. 기술 장벽이 생기기 전에 유전공학 기술을 따라가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LG화학 기술연구원 연구동 중앙에 있는 '강토소국 기술대국(疆土小國 技術大國)' 문구 옆에 선 최남석 전 원장. 이 문구는 '국토가 좁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의존할 것은 오직 사람의 경쟁력'이라는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오랫동안 강조해온 소망이다. <사진=대덕넷DB >LG화학 기술연구원 연구동 중앙에 있는 '강토소국 기술대국(疆土小國 技術大國)' 문구 옆에 선 최남석 전 원장. 이 문구는 '국토가 좁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의존할 것은 오직 사람의 경쟁력'이라는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오랫동안 강조해온 소망이다. <사진=대덕넷DB>





해외에서 박사를 영입하고 장비 구축과 연구 방법 정립 등 행동지침을 마련했다. 결과적으로 불가능이라 여겨졌던 유전공학 연구가 LG에 뿌리를 내렸다. 1981년도 유전공학연구부 설치를 시작으로 유전공학 전문연구동 준공, 해외 현지연구소 LBC 설치, 하이테크 리서치 파크 건설 등은 국내 유전공학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그룹의 지도자 역할이 중요했다고 전한다. 리더의 결단력이 있었기에 없었던 길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는 의미다.

"선진국의 연구 동향을 파악해 산업화 가능성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최고 경영자(구자경 회장)가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결정한 덕분에 실행할 수 있었어요. 그 다음은 모두가 역사였지요."

당시 국내 제약회사들이 복제약으로 돈을 벌 때 LG화학은 유전공학 연구를 통해 글로벌 신약 개발을 꿈꿨다. 곧 세계 최초 성과가 잇따랐다. 상품화한 유전공학적 암 질환 치료제 감마 인터페론 개발, 한국형 C형 간염 바이러스 염기서열 규명, 인간 성장호르몬 유트로핀 개발, 제4세대 세파계 항생제 개발 등이다. 

◆ 능력에 따른 인력 배치···멀리 보며 해외 박사학위 지원도

연구소는 연구개발뿐 아니라 인재양성에도 주력하며 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었다. 최 원장이 설명하는 인재 발굴 소신은 ▲채용에는 소장을 비롯한 최고 간부 전원이 참석한다 ▲핵심 연구원은 직접 뽑는다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극히 제한한다 ▲문화적 리더를 찾는다 등이다. 그는 연구원들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던 여러 제도를 도입했다.

1992년부터 시행된 '연구위원 직제'는 연구원을 일반 임원과 동등하게 대우하되 연구에만 전념하도록 관리 업무를 배제해주는 제도다.

특히 그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것은 석사 연구원의 해외 박사학위 취득 지원제도다. 이를 실행하려면 비용이 따랐지만, 교육 역시 멀리 내다봐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2005년부터 LG화학 기술연구원을 이끈 유진녕 원장과 고종성 제노스코 대표 등 파견 1호 박사들은 학위를 받고 돌아와 연구소의 핵심 인재로 활약했다.

최 원장은 직급에 상관없이 조직의 리더를 뽑는 '그룹 리더 제도'도 만들었다. 이에 따라 능력만 있으면 직급이 낮은 사람이 리더가 되어 연구개발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 "세계 인재 맞이하는 열린 연구소로···자긍심 가져라"

LG화학은 2000년에 세계 30대 화학회사 진입, 창사 100주년이 되는 2047년에는 세계 10대 화학회사 진입을 목표로 삼았다. 최 원장은 이 계획을 달성하기에 당시 사업은 한계에 다다랐다고 판단, 몇 가지 제언을 했다.

민간연구소는 물론 정부출연연구기관, 국내 벤처 기업도 그의 제언에 주목해 볼만 하다. LG화학은 2018년 세계 화학회사 10위에 선정되며 목표를 30년이나 앞당겼으니 말이다. 

최 원장이 세계 수준의 연구소로 성장하기 위해 강조한 것은 해외 연구인력 확보다. 그는 "지금까지 추진해 온 유학 특혜 시책을 계속 시행하고 외국 연구 인력도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한다"며 "특기와 실력이 있으면 국적, 인종, 성의 차별 없이 누구나 일할 수 있는 열린 연구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능력 위주의 인사 정책도 강조했다. 그는 "연구의 최대 적이라 할 수 있는 권위주의가 팽배한 조직, 상사에게 의존하는 조직, 권한은 없고 책임만 많은 조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능력에 따른 평가와 보상이 공정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세 번째는 마음가짐이다. 그는 연구자 모두가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자긍심으로 일할 것을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인생 원동력인 '캔 두 스피릿(Can Do Spirit)'을 소개한다. 

"나의 생활철학은 '하면 된다'였다. 요즘 젊은 세대는 '캔 두 스피릿'을 1970년대 개발독재 시절의 낡고 고루한 사고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순전히 내 힘으로 미국 유학을 떠나서 운명을 개척하고 조국에 돌아와서는 황무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 민간 연구소에 유전공학 연구의 씨를 뿌렸다. '캔 두 스피릿'으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그 정신을 공유한 동료, 선후배와 '더불어' 만들어 낸 것이다."

작년 8월 최남석 전 원장의 회고록 출간기념회에서 후배들과 함께. 최 원장과 연구소에서 함께했던 후배들 중 일부는 LG를 떠나 벤처를 창업하는 등 국내외 바이오·신약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김용주 대표와 박세진 CFO, 알테오젠 박순재 대표, 파이안바이오테크놀로지 한규범 대표 등이 있다. <사진=대덕넷DB >작년 8월 최남석 전 원장의 회고록 출간기념회에서 후배들과 함께. 최 원장과 연구소에서 함께했던 후배들 중 일부는 LG를 떠나 벤처를 창업하는 등 국내외 바이오·신약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김용주 대표와 박세진 CFO, 알테오젠 박순재 대표, 파이안바이오테크놀로지 한규범 대표 등이 있다. <사진=대덕넷DB>

◆ 최남석 원장은
1935년생으로 미국에서 유기화학 석사, 고분자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약물전달 시스템 개발 벤처 ALZA에서 합성 고분자물질 크로노머(CHRONOMER)를 발견했다. 고국에 돌아와 1974년부터 3년간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화공연구부장으로 재직하며 오디오·비디오 테이프 기초 소재인 폴리에스터 필름을 개발했다. 1980년, 당시로써는 드물게 국책 연구소에서 민간 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15년간 럭키중앙연구소(현 LG화학 기술연구원) 소장을 지냈다. 이후 LG화학 고문을 맡다가 1999년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