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07-13 15:52
[ESSAY] 명문대와 거리가 먼 내가 반크를 만들었습니다
 글쓴이 : happy
조회 : 311  

[ESSAY] 명문대와 거리가 먼 내가 반크를 만들었습니다

  • 박기태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 단장
  • 입력 : 2010.07.12 23:13 / 수정 : 2010.07.13 07:00
박기태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 단장

그해 겨울 세계지도 만드는 출판사에 이메일을 띄웠다.
'일본해가 아니라 동해라고'
보름뒤 고친다는 답변이 왔다.
그게 시작이었다
'겨자씨 기적'이룬 우리는 지금 새로운 꿈을 꾼다.
새로운 한국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주인공 될 거라고"

얼마 전 반크(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 동아리 교사로 활동 중인 광주의 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처음엔 4~6학년 아이들을 뽑아 반크 활동을 하기로 했지만 아이들이 영어로 한국을 소개하는 글을 제대로 쓸 수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고 한다. 반크에서 보내 준 60쪽짜리 '반크 동아리 교재'를 통해 한달간 영문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글을 익히도록 했다. 아이들은 겁먹지 않고 영어로 글 쓸 용기를 냈고 호주 초등학교 학생들과 이메일 교류를 시작했다. 한 학기가 지나자 아이들의 눈빛이 빛나면서 마치 생선가게에 놓여 있던 물고기들이 물 위로 방금 솟아오르는 것처럼 펄떡인다는 느낌이라고 했다.

만일 이런 사이버 외교관 20만명을 만들어 한 사람이 5명의 외국 친구들에게 한국을 알린다면 한국을 가까운 '단짝 친구의 나라'로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외국친구들이 세계지도에서 한국을 찾아보고 주변의 한국식당에 가서 김치 맛을 보고 한국어를 배우려 한국어사전을 사고, 일본해로 표기된 지도를 보면 동해로 바꿔달라고 출판사에 직접 편지를 보낸다. 이게 단지 나 혼자만의 꿈일까.

1999년 대학 졸업반 때 나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해외연수나 배낭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던 것은 펜팔이었다. 나는 미국·유럽 등의 대학 아시아 관련학과 인터넷 게시판에 무작정 글을 띄웠다. "한국 알기를 원하는 사람에겐 한국 가이드가 되겠다." 그러자 100여곳에서 답장이 와 이들과 펜팔을 시작했다.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외국 친구들은 한국을 중국이나 일본의 속국으로만 알고 있었다. 당시 한국은 올림픽도 치르고 월드컵 축구도 유치한 나라인데도 말이다. 인터넷을 통해 각국의 세계지도를 보니 우리의 '동해'는 거의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었다. 그해 겨울 나는 세계지도를 만드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사 에 이메일을 띄웠다. "우리가 동해라고 부르는 곳을 왜 일본해라고만 표기합니까…." 그러자 보름 뒤 담당자에게 답변이 왔다. "친애하는 박기태씨. 가까운 시일 내 일본해와 동해라고 함께 쓰도록 고치겠습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했고 그 기쁜 사연을 내 홈페이지에 띄웠다. 내가 미국의 거대 출판사를 움직일 수 있다니….
내 홈페이지는 그때부터 '국가 홍보-사이버 외교관'이 됐고 정식으로 반크란 명칭을 붙였다.

2003년엔 미국의 한 회원에게 제보가 왔다. "미국 글렌코출판사 교과서에선 한국을 중국과 일본 의 종속국이라고 기록했다. 한국 역사는 고조선이 아닌 한사군부터 시작된다고 했고 지도에 동해는 없고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다." 이 제보는 곧바로 미국에 있는 반크 회원들의 공감을 사 회원들은 왜곡된 미국 교과서 찾기에 나섰다. 미국 출판사 300곳과 웹사이트 400곳을 대상으로 편지와 이메일로 항의서한을 보냈다. 미국의 한 공영교육방송은 동해로 쓰겠다고 답변을 보내왔고 세계 최대 규모의 다국적 교과서 출판사인 더롤링 카인더슬리사는 2004년부터 고치겠다는 서한을 보내왔다. 이렇게 해서 고친 게 지금껏 310곳이나 된다. 작은 겨자씨의 기적이었다. 겨자씨가 자라면 풀보다 커져 나무가 되고, 그 나무에 새까지 와서 휴식을 취한다. 반크 활동도 그런 것이 됐다.

사실 반크 활동을 통해 변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학창시설 공부를 못해 명문대학과는 거리가 멀었고, 성격도 내성적이었다. 길거리에서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 물어보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줄행랑을 치던 소심했던 대학생이었다.
어쩌면 반크는 그런 나 자신을 변화시켰고, 변화된 나 자신은 나처럼 사회에서 주목을 받지 않았던 수많은 청소년들을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사이버 외교관으로 변신시켰다.

내가 꿈꾸는 반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반크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가수 김장훈과 함께 준비하고 있는 '10만 대학생 홍보대사 양성프로젝트'에 그 답이 있다. 방학 중 해외연수를 나가는 젊은이들이 귀국하면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해외에서 처음 만난 세계인들은 한국 하면 일본과 중국 옆에 있는 나라로 인식하고,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는 것이다. 반크의 미래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외국으로 출국하는 한국 청년들, 인터넷으로 세계에 접속하는 한국의 네티즌들을 한국홍보대사로 변신시켜 세계인들에게 한국을 내 친구 같은 이미지로 만드는 것이다.

거창한 꿈일 수도 있다. 하지만 10년 전 그 작은 펜팔 사이트가 오늘날 4만명의 단체로 성장했다. 우리 회원들은 지금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앞으로 외국에서 일본과 중국의 청년들이 "우리는 한국 옆에 있는 나라"라고 말하게 될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 중국처럼 땅이 넓은 국가, 일본처럼 돈이 많은 국가여야 리더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외국과 교류를 통해 자발적으로 리더십을 인정받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우리는 바로 그 새로운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