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07-02 13:14
[사람과 이야기] "우주비밀 풀 '암흑물질' 찾아 지하 700m 연구 자청했지요"
 글쓴이 :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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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이야기] "우주비밀 풀 '암흑물질' 찾아 지하 700m 연구 자청했지요"

  • 입력 : 2010.07.02 03:00

서울대 박사과정 최정훈씨
"평생 호기심 담긴 연구"… 高價장비·데이터 지키려 신혼집도 근처에 얻어

지난달 29일 오후 자동차가 강원도 양양군 양수발전소 입구 지하터널에 접어들자 서서히 내리막길을 타는 느낌이 들었다. 2㎞ 길이 터널 안으로 들어갈수록 빛은 점점 사라졌고 환풍기 소리만 커졌다. 차가 터널 안 작은 공터에 멈추자 최정훈(33·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박사과정)씨가 내려 터널 전등을 켰다. 시커먼 어둠 속에서 컨테이너 박스 2개를 쌓아 만든 듯한 낡은 간이 건물이 나타났다. 최씨는 "이곳이 구룡령 지하 700m에 있는 암흑물질탐색연구단 연구실"이라고 말했다.

'암흑물질'이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우주의 구성물질을 말한다. 과학계에서는 암흑물질이 우주 전체 질량의 25~30% 정도를 차지한다고 보고 있다. 이 물질은 우주의 미래를 예측하는 단서가 되기 때문에 미국이나 영국·이탈리아·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국가 차원에서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김선기 교수 연구팀이 2003년 한국중부발전의 도움을 얻어 이곳에 국내 유일의 암흑물질 탐색 연구실을 마련했다.

암흑물질탐색연구단 최정훈씨가 지하 700m 연구실에서 관측장비를 살피고 있다. 암흑물질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우주의 구성물질을 말한다. /암흑물질탐색연구단 제공
연구실 외관은 초라해 보이지만 내부 장비나 기술력은 세계적이다. 이곳에선 우주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땅도 뚫고 다니는 암흑물질을 연구하기 위해 납·구리·질소 등으로 봉인된 크리스털을 이용한다. 봉인막을 뚫고 들어간 암흑물질이 크리스털에 닿으면 크리스털은 빛을 낸다. 그 빛을 컴퓨터로 분석해 암흑물질과 일반 물질을 가려낸다. 때문에 다른 물질의 접근을 줄이기 위해 지하 깊숙한 곳에 연구실을 설치한 것이다. 최씨는 "크리스털을 사용해 암흑물질을 탐색하는 장치는 중국·인도·러시아 등에서도 찾아와 공동 연구를 하고 기술을 배워갈 정도로 우수함을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연구팀은 지난해 이곳 연구실 한 쪽에 장비를 설치하고, 연구자료를 공유하고 있다.

최씨는 2004년부터 김 교수가 지도하는 이 연구팀에 참가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별과 별 사이의 어두운 부분이 궁금해 과학 공부를 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팀에 들어간 뒤 대학원 수업이 없는 날과 방학 때는 이곳에서 생활했다. 3년 전 결혼한 뒤로는 아예 신혼살림을 인근 속초에 차리고 관리직원 1명과 함께 이곳에 상주하며 연구하고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최씨는 "부모님 반대가 심했고 외부의 관심이나 지원도 턱없이 부족했지만 평생의 호기심이 담긴 이 연구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암흑물질을 탐색하기 위한 크리스털 장비. 이 크리스털은 물질이 닿으면 빛을 낸다. /암흑물질탐색연구단 제공
최씨는 지상에서 연구를 하다가 지하 연구실에서 새로운 신호가 오면 곧바로 700m 아래 어두운 지하로 자동차를 몬다. 대부분 신호는 장비 고장을 알리는 '불청객'이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수십 년을 매달렸지만 아직 공인된 성과가 없다. 하지만 장비가 고장 나면 연구에 막대한 지장이 있기 때문에 최씨는 신호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불필요한 공기를 차단하기 위한 질소주입기에 문제가 생기면 수천만원짜리 크리스털이 깨질 수 있고, 컴퓨터가 고장 나 수년간 모아둔 데이터가 사라질 수도 있다.

폭설이나 장마 때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 일쑤다. 그는 "재작년 겨울 간밤에 내린 폭설을 헤치고 7시간 걸려 연구실에 갔더니 컴퓨터가 다 젖어 있었다"며 "컴퓨터를 말리기 위해 혼자서 컴퓨터를 일일이 뜯어내 지상으로 옮기며 하늘을 원망했다"고 했다. 또 지하에서 연구를 하다 전기가 끊기거나 천장에서 돌이 떨어져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365일 내내 기다림과 마음졸임 속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씨는 "'암흑물질탐색연구단'이 새겨진 승용차를 타고 읍내에 나가면 사람들이 '어느 광산에서 일하느냐', '암흑물질은 어떤 광물이냐'고 묻기도 한다"며 "쏟아지는 은하수를 보며 퇴근하는 맛으로 연구한다"고 웃었다.

그는 "수십 년을 기다려도 암흑물질이 날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에게 포기란 없다"며 "비록 암흑물질을 당장 찾지는 못해도 암흑물질이 존재하지 않는 영역을 조금씩 확인해나가는 것도 중요한 성과"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