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9-14 15:06
[일상의탈출] [이강운의 곤충記]가을철 풀벌레소리 정취에 숨은 과학
 글쓴이 : happy
조회 : 6  


2018년 09월 12일 15:56


왕귀뚜라미 소리(Rec:180906_11:32)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귀뚜라미 노래 소리가 귀를 적신다. 가을의 전령 귀뚜라미라더니 이름값을 한다. 매미 울음 잠잠해지고 귀뚜라미 소리 들려오자 아침저녁으로 소매 긴 옷을 챙겨 입는다. 시원한 바람소리와 ‘차르르르’ 울려퍼지는 왕귀뚜라미 노래소리가 잘 어우러져 가을 정취 물씬하다.

 


알락방울벌레 소리(Rec:180903_18:29)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소리는 공기의 파장이다. 보통 동물들은 공기를 들어 마시면서 성대의 근육을 조절해 소리를 내지만 곤충계 ‘소리의 달인’ 귀뚜라미는 마찰을 이용해 소리를 낸다. 도대체 어떻게 티끌 하나 없는 맑고 깨끗한 소리를 낼까?

 


 

귀뚜라미는 오른쪽 앞날개를 가로지르는 뾰족하고 오톨도톨한 작은 돌기가 튀어나와 톱날같이 생긴 줄(File)을, 왼쪽 날개 위 쪽 가장자리 마찰편(Scraper)에 비비면서 소리를 내고, 동시에 유리같이 투명하고 넓은 경판(Mirror)을 떨어 증폭시킨다. 경판은 소리 증폭을 위해 극도로 진화한 발성 기구로, 날개 형태를 지지하는 핏줄 같은 시맥(翅脈)을 한 쪽으로 몰고 투명하고 얇은 판으로 된 넓은 막(膜)을 만들었다. 소리를 증폭시키기 위해 날개 시맥이 변화한 것이다.

 

왕귀뚜라미 소리 내는 방법(날개를 긁어 소리를 낸다)

왕귀뚜라미 소리 내는 방법(날개를 긁어 소리를 낸다) 

Mirror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Mirror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귀뚜라미가 주로 사는 곳은 돌 틈이나 굴 같은 곳인데 이 또한 울림을 통해 소리를 증폭하기 위함이다. 소리를 멀리 퍼뜨리기 위해 신체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의 공간을 잘 활용한다.  

 

왕귀뚜라미의 File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왕귀뚜라미의 File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왕귀뚜라미의 File과 Teeth-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왕귀뚜라미 Scraper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왕귀뚜라미의 Scraper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나무 귀뚜라미(Tree cricket)로 불리는 긴꼬리쌕쌔기는 나무나 가는 풀에 매달려 노래한다. 줄을 마찰편에 비비며 소리를 만드는 메카니즘은 동일하지만 귀뚜라미와는 반대로 왼쪽 앞날개에 있는 줄을 오른쪽 날개에 있는 마찰편으로 긁어 소리를 낸다. 

 

긴꼬리쌕쌔기 소리 내는 법(날개를 펼치면서 소리를 낸다)

긴꼬리쌕쌔기 소리 내는 법(날개를 펼치면서 소리를 낸다)

양 쪽 날개를 마찰시켜 소리를 내는 종류를 크게 여치아목으로 분류하는데 날개를 어떻게 겹치느냐에 따라 여치과와 귀뚜라미과로 나눈다. 오른쪽앞날개가 위로 올라와 있는 왕귀뚜라미같은 놈들은 모두 귀뚜라미과, 왼쪽앞날개가 위로 올라와 있는 긴꼬리쌕쌔기 같은 종들은 여치 종류에 속한다.   

 

긴꼬리쌕쌔기의 File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긴꼬리쌕쌔기의 File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긴꼬리쌕쌔기의 Scraper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긴꼬리쌕쌔기의 Scraper-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귀뚜라미의 소리는 작고 낮은 소리부터 시끄럽고 높은 소리까지 다양하다. 우리가 듣는 대부분의 소리는 유인하는 노래이지만 상황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 멀리 있는 암컷을 부를 때는 크게, 곁에 있는 암컷에게 사랑을 구할 때는 부드럽게, 정적이 나타났을 때는 요란하게 소리친다. 45도~90도 사이로 날개를 벌리고 줄이면서 각도에 따라 음색과 파장을 다르게 해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 

 

6종 곤충의 소리 주요 주파수 Spectrogram

6종 곤충의 소리 주요 주파수 Spectrogram

6종 곤충 소리의 주요 주파수 비교표

6종 곤충 소리의 주요 주파수 비교표

소리를 내니 당연히 듣는다. 음파가 귀에 들어와서 고막(鼓膜)을 울리고, 그 울림이 청각 신경을 자극하면 음파를 느끼는 사람의 귀처럼, 귀뚜라미도 고막으로 소리를 모으고 변환한 다음 그 주파수를 분석한다. 단지 고막이 얼굴이 아니라 앞다리 종아리마디에 있을 뿐. 메뚜기 얼굴은 너무 작아 씹어 먹어야 할 큰 턱과 더듬이 그리고 커다란 눈으로 더 이상 공간이 없다. 게다가 청각 기관은 이들에게 생명과 같으므로 돌출 보다는 숨기는 게 나은 방법이다. 얼굴에 있던, 다리에 있던 목적은 같다. 왕귀뚜라미나 긴꼬리쌕쌔기의 고막은 양쪽 앞다리에 있다. 

 

긴꼬리쌕쌔기의 고막기관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긴꼬리쌕쌔기의 고막기관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왕귀뚜라미의 고막기관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왕귀뚜라미의 고막기관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가수와 모창자가 불러 진짜 가수를 찾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스튜디오라는 제한 된 공간임에도 원곡의 가수를 구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열린 공간인 자연에서는 동시에 많은 종들이 노래하므로 소리가 섞이기 일쑤이고 제 짝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우수한 청각 기관을 갖고 있는 귀뚜라미가 동종의 독특한 음색과 파장으로 자기 짝을 찾는 일은 누워서 떡 먹기다.

 

메뚜기목 3종 주파수(담색방울벌레, 알락방울벌레, 긴꼬리쌕쌔기는 각기 다른 소리를 내지만 자기 짝을 찾아 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

메뚜기목 3종 주파수(담색방울벌레, 알락방울벌레, 긴꼬리쌕쌔기는 각기 다른 소리를 내지만 자기 짝을 찾아 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

반딧불이의 암컷과 수컷은 불빛으로 교신하고, 암컷 나방은 페로몬으로 수컷을 유인한다. 낮에 활동하는 나비들은 눈으로 직접 보면서 짝을 찾고, 더듬이를 맞대어 접촉하며 정보를 공유하는 개미도 있다. 귀뚜라미는 소리로 교신한다. 소리를 내는 가장 큰 목적이 이성을 유인하기 위함인데 암컷이 유인하는 다른 종류들과는 달리 수컷이 암컷을 유인한다. 수컷 귀뚜라미 노래는 한 밤에 창문을 열고 애절하게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가 맞다. 후각이나 시각 혹은 직접 접촉하는 종류들보다 힘은 들지만 청각으로 신호를 보내는 일은 방해물을 피해가며 멀리 전파할 수 있고 어둠도 상관없으니 나름 강점이 많다. 

 

곤충의 교신방법

곤충의 교신방법

가을 색 깊어가는 이즈음, 귀뚜라미를 벗 삼고, 그들의 연주능력을 인정해 볏짚으로 여치집을 만들어 아름다운 소리를 들으려했던 옛 사람들의 정서가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 참고문헌
-Dobai, A., et al. (2018). Acoustic communication in the pine engraver bark beetle: do signals vary between behavioural contexts?. Physiological Entomology, 43(1), 30-41.
-Tiwari, C. and Diwakar, S. (2018). Singers in the grass: call description of conehead katydids (family: Tettigoniidae) and observations on avoidance of acoustic overlap. Bioacoustics, 1-17.
-Symes, L. B. (2018). Spatial and temporal variation in three call traits and preferences of the tree cricket Oecanthus forbesi. Behavioral Ecology and Sociobiology, 72(3), 35.
-Gullan, P. J., and Cranston, P. S. (2010). The insect. pp99-101.
-Montealegre-Z, F. and Mason, A. C. (2005). The mechanics of sound production in Panacanthus pallicornis (Orthoptera: Tettigoniidae: Conocephalinae): the stridulatory motor patterns.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208(7), 1219-1237.
-Sueur, J. (2002). Cicada acoustic communication: potential sound partitioning in a multispecies community from Mexico (Hemiptera: Cicadomorpha: Cicadidae). Biological Journal of the Linnean Society, 75(3), 379-394.
-Stephen, R. and Hartley, J. (1995). Sound production in crickets.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198(10), 2139-2152.
-HELLER, K. G. (1986). Warm-up and stridulation in the bush cricket, Hexacentrus unicolor Serville (Orthoptera, Conocephalidae, listroscelidinae).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126(1), 97-109.
-Alcock J. (1984) - Animal behavior. An evolutionary approach, Third Edition. Sinauer Associates, Inc. Sunderland, Mass, 596 pp.
-https://species.nibr.go.kr

 

 

※ 필자소개
이강운 곤충학자 (holoce@hecri.re.kr)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사)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국립인천대학교 매개곤충 융복합센터 학술연구 교수. 과학동아 Knowledge 칼럼 ‘애벌레의 비밀’을 연재했다. 2015년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Ⅰ 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 Ⅰ’(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2016년 캐터필러 Ι, 2017년 캐터필러Ⅱ(도서출판홀로세)를 지었다.

 


 

※편집자주. 곤충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지구에 왔고, 지금도 우리보다 더 많은 수가 지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라진 뒤에도 곤충은 여전히 지구를 지키겠지요. 하지만 도시의 삶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과 마음에서 곤충은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곤충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신비에서도 멀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곁을 지키는 곤충들의 한살이와 생태를 담은 글과 사진을 준비했습니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해 주는 작은 알림이 됐으면 합니다.


  • 이강운 곤충학자 holoce@hec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