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11-13 21:27
[건강한 삶] 역지사지의 해법, 공감 회로의 전원을 켜라
 글쓴이 :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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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기술이 발달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안부를 묻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그럴수록 우리는 소통의 부재를 절실히 경험할 뿐이다해결되지 않는 이 소통의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그 해답은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지금 이 현대 사회에서 찾을 수 있다.

 

이탈리아 파르마 대학의 신경과학 연구팀은 그날도 원숭이의 행동과 뇌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었다. 쉬는 시간, 원숭이의 뇌에 계속 꽂혀 있던 전극에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원숭이가 뭔가를 쥘 때나 활성화되는 뇌의 ‘F5 영역’이 갑자기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원숭이가 뭔가를 쥐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아이크림을 손에 쥔 연구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이 우연한 발견으로, 뇌에서는하는 것과 그것을보는 것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때부터 신경과학자들은 이를거울 뉴런(Mirror neurons)’이라 부른다. 이 신경세포 때문에 우리는 남이 하는 행동을보는것만으로도, 내가 실제로 그 행동을때 내 뇌 속에서 벌어지는 것과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거울 뉴런은 일종의 시뮬레이션 세포인 셈이고, 인간의 거울 뉴런은 원숭이 것보다 더 정교하다. 2002년 월드컵의 거리 응원을 떠올려보자. SK텔레콤의 ‘Be the Reds’가 새겨진 붉은 티셔츠를 입은 수만 명의 시민들이 대형 스크린 위로 중계되는 대한민국 축구 선수들의 몸짓 하나 하나에 탄성을 지르고 있다. 결정적인 찬스를 날린 선수가 머리를 쥐어뜯는 모습이 스크린에 클로즈업되자 거리의 응원단도 머리를 쥐어뜯는다. 또 골이 들어간 후 서로 얼싸 안고 기뻐하는 선수들을 보며 응원단도 옆 사람과 껴안고 펄쩍펄쩍 뛴다. 축구는 그들이 하고 우리는 관전하지만, 거울 뉴런 덕분에 우리 뇌에서는 실제로 축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막 끝난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이는 이상화와 김연아 같은 선수만이 아니다. 그 우아한 스케이트 질을 ‘보기’만 하는 전 국민의 뇌 속에서도 스케이트는 빙판을 아름답게 ‘가르고’ 있다. 남이 하는 어떤 행동을 내가 보기만 해도, 내가 그 행동을 할 때 내 뇌에서 벌어지는 일을 동일하게 경험하는 것, 이것이 거울 뉴런계의 작용이다. 이것은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이전에 이미 내 뇌에서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공감 회로라 할 수 있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누구나 이 공감 회로를 갖고 태어난다.

 

거울 뉴런, 불행이자 다행인 장치.....................

그렇다면 이 공감 회로에 문제가 생기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먼저,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생긴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사회적 상호 작용에 실패하고 언어적·비언어적 의사소통에 장애가 있다. 또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상동증을 보이기도 하는데, 거울 뉴런계의 이상도 자폐증의 한 원인임이 밝혀졌다.

한편 타인의 표정을 잘 따라 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타인의 감정을 잘 읽지 못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 사례는 운동 영역인 거울 뉴런계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심지어 거울 뉴런계는 타인을 직접 관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 가령 고통을 당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소리를 듣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단지 상대에게 고통 자극이 주어졌다는 신호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뇌의 정서 영역에서 거울 반응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심지어 고통을 당하는 사람과 같은 부위의 정서적 반응이 실험자에게서 그대로 나타나기도 했다. 직접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우리의 신경은 계속 켜져 있고, 이것은 우리 모두가 신경적으로 네트워킹되어 있다는 징표이다. 우리 신경은 늘 다른 이들에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이런 자동 공감 장치 외에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추론’할 수 있는 능력까지 진화시켰다. 다른 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易地思之), 즉 관점 전환 능력은 영장류 중에서도 우리 인간만이 장착한 신무기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거나 감정적으로 연결이 희미한 다른 이들에게까지도 사회적 관심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심지어 우리는 타인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 더 나아가 기계의 관점까지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비슷한 하소연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강아지가 다쳐서 병원에 갔는데 치료비가 엄청나서 고민했어요. 그런데 눈물이 그렁그렁한 딸을 보고는 얼른 카드를 꺼냈죠.” 강아지가 자신의 도덕성을 시험했다나? 치료비가 월급의 반이었다니 그럴 만도 하다. 애완동물을남에게 맡기는 것도 안쓰러워 멀리 여행도 못 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리는 점점 공감의 동심원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이 얼마나 다행이며 불행인가! 다른 이의 상태에 신경을 끄고 살고자 해도 거울 뉴런들이 늘 켜져 있기 때문에 신경이 쓰이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반면 남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아 귀를 막고 있어도 거울 뉴런들이 켜져 있기 때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 이 얼마나 불행인가. 대체 인간은 어떻게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존재로 진화했을까?

침팬지와 인간은 600만 년 전쯤에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사촌 종이다. 그리고 이들보다 오래된 영장류들은 6,500년 전쯤에 일어난 룡의 대멸종 덕택에 진화한 막둥이들이다. 영장류 사회가 다른 동물들에 비해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복잡한 사회성이다. 그들은 대개 집단을 이루어 사는데 지능이 더 높은 종일수록 더 큰 집단을 형성한다. 가령 침팬지는 한 집단이 대개 20개체 수를 넘지 않는데 비해 인간의 경우에는 최대 150명 정도이다.

물론 집단생활은 이점이 많다. 모든 종류의 일, 예컨대 먹이 찾기, 방어하기, 양육하기 등을 홀로 감당한다는 것은 덩치 큰 동물 입장에서는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드는 비효율적인 삶의 방식이다. 반면 공동으로 사냥하고 먹이를 나누고 함께 서식지를 지키는 일은 집단과 개인이 함께 이득을 볼 수 있는 전략이다.

 

경험과 공감의 상관관계.........................

하지만 집단생활은 단점도 있다. 다른 개체들과 함께 무언가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행동의 의도가 무엇인지, 그를 화나게 한 것은 아닌지 등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 자기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방은 언제나 나를 속일 수있는 가능성이 있고, 반대로 내가 상대방을 속이고 싶어도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고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피곤하다(그래서 일보다 사람이 더 피곤한 거다). 우리가 집단생활을 진화시킨 영장류인 한, 사회적 복잡성은 우리의 영원한 숙제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의 거울 뉴런계의 작동과 역지사지 능력은 인간 사회의 복잡성 문제를 해결하게끔 진화된 우리의 인지 적응들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 능력을 장착하고 태어난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능력의 개인차와 문화차다. 즉 어떤 개인은 공감과 이해 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나고, 어떤 사회는 다른 사회에 비해 공감과 이해를 중시하고 더 잘한다는 것이다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조직의 공감과 이해 지수가 그 조직 구성원의 경험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이다. 거울 뉴런계는 타고난 그대로 보존되지 않는다. 그 뇌의 소유자가 어떠한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서 세부적으로 달라진다. 예컨대 늘 걱정하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자란 아이는 그쪽으로 길들여진 거울 뉴런계 때문에 남들의 불안한 표정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늘 혼내는 상사 밑에서 일해온 직장인은 누군가의 부정적 표정만 보아도 뇌는 이미 혼나는 중이다. 따라서 내가 어떤 경험들에 둘러싸여 있느냐가 공감 능력의 미묘한 차이를 가른다고 할 수 있다.

역지사지 능력의 경우에도 그것이 어떤 종류의 조직에서 발휘되는 것인가에 따라서 그 폭이 달라진다. 가령 동성애자를 한 번도 구경 못한 사람과 옆집 커플이 동성애자인 사람은 사랑과 결혼의 형태에 대한 상상력의 폭이 똑같을 리 없다. 상상은 추론이지만, 경험은 그 상상력의 증폭(감쇄)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유()의 존재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느냐가 타인에 대한 이해력 증가에 중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 그러면 우리 조직 구성원들의 공감과 이해 지수를 높이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다양성 지수를 높이는 것이 한 가지 해답일 수 있다. 외국에 출장을 가서 늘 느끼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획일적이라는 사실이다. 몇 년 전, 하와이 출장을 갔을 때다. 진 해변이 즐비한 유명 관광지다 보니 비키니 패션도 가지각색이었다. 그런데 그 해변에서 가장 인상적인 광경은 그 수영복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의 몸매였다. 늘씬한 사람들(여성이든 남성이든)만 몸매를 드러내고 해변을 즐기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같으면 민망하다고 생각할 몸매들이 거기서는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

집단주의적이고 상호의존적인 동아시아 문화를 유산으로 물려받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 대학입시 관문 앞에 그 개성 넘치는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교육제도는생각 다양성’의 주적(主敵)이다. 한창 다양한 생각들을 분출시킬 나이의 청년들을 군대에 보내야 하는 현실은 남북 대치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국가의 생각 다양성 지수를 갉아 먹는 주요인이다. 좁은 국토에 많은 주민을 수용하기 위해 활용돼온 아파트 문화는 일상에서 생각 다양성을 정체시키는 외부 환경 요인이기도 하다. 그게 그거인 공간을 매일 똑같이 드나드는 우리의 뇌에서 새로운 생각이 샘솟을 리 없다.

하지만 획일성의 가장 큰 해악은 그것이 창의성 없는 사회를 만든다는 데 있지 않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다양성의 감소가 우리의 타고난 공감과 이해 능력의 감쇄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가령 비키니를 입은 뚱뚱한 몸매를 보지 못한 사회는 그만큼 공감과 이해 능력이 떨어지는 사회다. 성숙한 조직은 공감과 이해, 그리고 소통이 화두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제 내 주변부터 살펴보자. 내 공감 뉴런을 밝게 빛나게 만드는 배경들인가, 혹시 역지사지 능력을 감퇴시키는 배경들은 아닌가? 시선을 바꿔 나는 상대방의 어떤 배경인가? 소통과 공감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기억하라. 우리는 우리 모두의 거울 뉴런들이다.

 

글. 장대익(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출처: http://skccblog.tistory.com/1674 [SK(주) C&C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