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10-12 16:51
[건강한 삶] [강석기의 과학카페] 2017 노벨상 발표를 지켜보며 떠오른 두 명의 로널드
 글쓴이 :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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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2017 노벨상 발표를 지켜보며 떠오른 두 명의 로널드

2017년 10월 10일 15:00

체스 대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게임은 첫 게임과 마지막 게임이다.
- 시드니 브레너와 J.D. 버널


그(로널드 코놉카)는 지도교수인 시모어 벤저와 함께 일주리듬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논문(1971년 ‘미국립과학원회보’ 68권 2112쪽)을 발표했다. 이 분야는 이어지는 45년의 많은 부분을 이 로제타석의 의미를 해독하고 중요성을 확인하는데 바쳤다... 그(코놉카)는 일주리듬 문제를 벤저에게 제시했고(그 반대가 아니다) 일주리듬 돌연변이체를 찾는 실험을 설계하고 수행했다.
- 마이클 로스바쉬


로널드 드레버는 손재주가 좋은 물리학자로 실험을 할 때면 어린 아이처럼 좋아했다.
- 라이너 바이스

 


올해도 어김없이 10월 초 노벨과학상 수상자 발표가 있었고 우리의 기대는 이번에도 아쉬움으로 끝났다. 성균관대 박남규 교수가 올해 유력한 화학상 후보로 거론됐지만 사실 페로브스카이트태양전지 분야가 선정된다고 해도 박 교수가 포함될지는 불확실하다.


2009년 세계 최초로 페로브스카이트전지를 개발한 사람은 일본 토인요코하마대 미야사카 추토무 교수다. 따라서 한 자리는 첫 게임을 뛴 미야사카 교수의 몫이고 나머지 두 자리를 두고 경합해야한다. 그런데 이 가운데 한 자리는 아무래도 스위스 로잔공대 미카엘 그라첼 교수에게 돌아갈 것 같다. 그라첼은 1991년 염료감응태양전지를 처음 만들었고 페로브스카이트전지 효율을 높이는데도 기여한 이 분야의 대가다. 사실 미야사카 교수도 염료감응전지의 새로운 유형으로 페로브스카이트전지를 만든 것이다.


결국 한 자리가 남아있는데 마지막 게임, 즉 페로브스카이트전지 상용화에 결정적인 기여(불안정한 물질이라 수명이 짧은 게 걸림돌이므로 이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일일 것이다)를 한 사람에게 돌아갈 것이다. 현재 박 교수와 함께 영국 옥스퍼드대 헨리 스네이스 교수 등 쟁쟁한 사람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올해 노벨상 가운데 생리의학상과 물리학상은 노벨상 수상의 조건, 즉 살아있어야 하고 최대 세 명까지 받을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했다. 아무리 그 분야에서 큰 기여를 했어도 이미 고인이 됐으면 소용이 없고 세 명이 넘으면 상을 못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을 소개하는 신문이나 TV의 뉴스에서 이런 사연을 시시콜콜 얘기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노벨상 수상은 ‘살아남아 세 사람 안에 든 자의 기쁨’이란 말이다.

 

1960년대 후반 칼텍의 대학원생 로널드 코놉카(사진)는 일주리듬을 잃은 돌연변이 초파리를 만드는 연구를 설계하고 실험을 진행해 멋지게 성공했다. 그와 지도교수 시모어 벤저가 쓴 1971년 논문은 현대 생체시계 연구의 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코놉카는 2015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 셀 제공
1960년대 후반 칼텍의 대학원생 로널드 코놉카(사진)는 일주리듬을 잃은 돌연변이 초파리를 만드는 연구를 설계하고 실험을 진행해 멋지게 성공했다. 그와 지도교수 시모어 벤저가 쓴 1971년 논문은 현대 생체시계 연구의 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코놉카는 2015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 셀 제공

살아남아 세 사람 안에 든 자의 기쁨


2017년 노벨생리의학상에 생체시계 분야가 선정됐을 때 ‘아직 노벨상을 안 받았었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정말 이 분야가 선정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지구의 자전, 즉 낮과 밤의 24시간 주기에 맞춰 몸이 리듬을 타게 조절하는 생체시계는 대중에게도 너무나 익숙하다. 수면장애나 비만, 암 발생 위험성 등 생체시계 교란과 관련된 건강 문제가 부각된 지도 오래다. 따라서 생체시계 분야의 개척자들이 10년 전에 노벨상을 받았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오히려 이제야 선정된 게 때늦은 감이 있다.


만일 5년 전인 2012년 생체시계 분야가 선정됐다면 수상자 가운데 한 사람은 바뀌었을 것이다. 2015년 다소 이른 나이인 68세에 사망한 로널드 코놉카(Ronald Konopka)가 수상자에 포함됐을 것이다. 만일 10년 전인 2007년 생체시계 분야가 선정됐다면 두 사람이 바뀌었을 것이다. 이해 11월 30일 86세로 타계한 시모어 벤저를 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벤저와 코놉카는 미국 칼텍의 스승과 제자 사이로, 두 사람은 1971년 생체시계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결국 나머지 한 자리를 두고 올해 수상한 세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선택됐을 것이다. (어쩌면 2013년 노벨물리학상처럼 두 사람만 받았을 수도 있다. 1964년 몇 달 간격으로 발표된, 힉스 메커니즘을 제안한 논문 세 편의 저자 여섯 명 가운데 다섯 명이 당시 생존해 있었다. 결국 위원회는 가장 늦은 논문의 저자 세 사람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하는 걸 포기하고 두 사람(프랑수아 앙글레르와 피터 힉스)만 선정했다. 세 명 가운데 제럴드 구럴닉이 2014년 78세에, 톰 키블이 2016년(6월 2일) 84세에 타계했다. 따라서 만일 힉스 입자 검출이 3년쯤 늦어 지난해 노벨상에 선정됐다면 수상자는 칼 헤이건이 포함돼 세 명이었을 것이다.)


1921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벤저는 1947년 퍼듀대에서 고체물리학 연구(게르마늄의 광전효과)로 박사학위를 받고 바로 교수로 임용됐다. 그런데 우연히 에르빈 슈뢰딩거의 책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감명을 받아 교수직을 미련 없이 버리고 칼텍의 막스 델브뤽 교수 실험실에 박사후연구원으로 들어간다. 델브뤽 역시 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전향한 사람으로 박테리오파지(박테리아에 감염하는 바이러스) 연구로 196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퍼듀대에 다시 자리를 잡은 벤저는 파지 유전학 연구를 이어나가다(유전자가 DNA 조각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싫증을 느끼던 차에 1967년 칼텍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이 해에 들어온 대학원생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코놉카다. 그리고 코놉카의 연구를 계기로 벤저는 행동유전학 분야에 뛰어들었다. 행동유전학이란 유전자와 행동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분야로 당시는 초창기였다.

 


올해 수상자 마이클 로스배시가 부고 써


1947년 생으로 불과 스무 살이었던 코놉카는 그러나 대단히 재기발랄한 청년이었다. 코놉카는 유전자가 생명체의 형태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하고 이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이때 가장 파악하기 쉬운 행동이 바로 주기성이었다.


코놉카는 초파리의 ‘우화(羽化)’가 해 뜰 무렵 일어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초파리 고치에서 성충이 나오는 때는 하루 가운데 해 뜰 무렵에 몰려있다. 촉촉하고 점차 온도가 올라가는 이른 아침이 고치를 갓 벗어난 곤충이 날개를 말리고 비행을 준비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는 DNA를 손상시키는 약물인 EMS을 처리해 인위적으로 다양한 돌연변이체를 만들었다. 그 뒤 돌연변이체 자손을 얻어 이 녀석들이 우화할 무렵이 됐을 때 24시간 내내 깜깜한 곳으로 옮겨놓았다. 24시간 주기의 생체시계는 몸속에 내장돼 있기 때문에 정상 초파리나 생체시계 유전자가 손상되지 않은 돌연변이체는 이런 환경 아래서도 24시간 주기로 우화하는 패턴을 보일 것이다.


예상대로 돌연변이체 대부분은 24시간 우화주기를 보였다. 그런데 한 돌연변이체의 새끼들이 시간에 관계없이 아무 때나 우화한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코놉카는 약 2000가지 돌연변이체의 우화 패턴을 분석해 우화의 주기가 19시간으로 당겨진 종류와 28시간으로 늦춰진 종류를 발견했다. 앞의 돌연변이체를 포함해 모두 세 가지 생체시계 돌연변이체가 나온 것이다.


제자의 발견에 깜짝 놀란 벤저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유전자 분석법을 이용해 이 세 돌연변이체가 한 유전자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장 난 결과라고 추측했다. 당시 생체시계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동식물의 24시간 주기처럼 복잡한 행동에는 수백 가지의 유전자가 관여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이 발견은 충격이었다.


두 사람은 1971년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에 실은 논문에서 “우리가 찾아낸 서로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이는 세 가지 일주리듬 돌연변이체가 동일한 유전자에 문제가 생긴 결과라는 건 놀라운 일”이라고 언급했다. 둘은 이 유전자를 ‘period(주기, 줄여서 per라고 씀)’라고 불렀다. 그리고 주기가 상실된 변이체를 per0, 주기가 짧아진 변이체를 pers(short의 s), 주기가 길어진 변이체를 perl(long의 l)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per0는 중간에 종결코돈으로 바뀌면서 토막 나 기능을 잃은 단백질이 만들어진 결과이고 pers와 perl는 중간에 다른 아미노산으로 바뀌면서 단백질의 활성이 바뀐 결과라고 추측했다.


그 뒤 벤저 교수는 생체시계 연구에 흥미를 잃고 행동유전학의 다른 분야로 갈아탔고 1971년 논문으로 홈런을 친 코놉카는 이듬해 박사학위를 받고 스탠퍼드대에서 2년 동안 박사후연구원을 한 뒤 1974년 칼텍의 조교수가 됐다. 코놉카는 게놈에서 per 유전자의 정확한 위치를 찾는 연구를 계속했다.


그러나 per 유전자 사냥의 영광은 다른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1984년 미국 브랜다이스대의 제프리 홀 교수와 마이클 로스배시 교수의 공동연구팀과 록펠러대 마이클 영 교수팀이 각각 독립적으로 per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분석해 그 실체를 파악했다. 그리고 3년 뒤 영 교수팀은 세 종의 돌연변이체 각각에서 per 유전자의 어디가 고장이 났는가를 밝혀내는데, 벤저와 코놉카가 1971년 논문에서 예상한 그대로였다.


그 뒤 세 사람은 생체시계 작동 메커니즘을 규명했고 관련 유전자들을 추가로 발견했다(자세한 내용은 노벨위원회가 발표한 2017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사유 번역 기사
‘생체 시계의 비밀을 밝힌 과학자들’ 참조). 아무튼 개척자 벤저와 코놉카가 고인이 된 상태에서 이들 세 사람이 수상자로 선정된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2015년 2월 14일 코놉카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뒤(사인은 심장마비로 추정된다) 로스배시 교수는 학술지 ‘셀’ 4월 9일자에 그를 기리는 부고를 썼다. 벤저야 한 세대 위 사람이지만 코놉카는 세 살 연하인 동년배로 1980년대 잠깐 공동연구를 하기도 했다.


부고를 읽어보니 뜻밖에도 코놉카의 인생이 순탄치가 않았다. 즉 20대 초 벤저 교수와 생체시계가 고장 난 돌연변이 초파리를 만들었을 때가 정점이었고 그 뒤로는 일이 잘 안 풀렸다. 놀라운 업적으로 불과 27세인 1974년 명문 칼텍의 교수가 됐지만 너무 부담이 컸는지 수년 간 이렇다 할 논문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학교를 그만두게 됐고 뒤늦게 좋은 논문이 나왔지만 이미 늦었다.


1980년대 초 클락슨대로 자리를 옮겨 안정을 되찾나싶었는데 학교가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1990년 교수직을 잃었다. 그 뒤 학계를 떠나 25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며 살다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은 것이다. 로스배시 교수는 부고에서 자신들이 per 유전자를 규명하는데 코놉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로스바쉬의 공동연구자 제프리 홀은 1971년 박사후연구원으로 벤저 교수의 실험실에 들어갔고 동년배인 코놉카와 친하게 지냈다. 코놉카는 홀과 로스바쉬의 1984년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가 칼텍 교수로 있을 때 냉소적인 유머와 박학다식함이 버무려진 강의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어릴 때부터 전자장치를 만드는 걸 좋아했던 로널드 드레버는 1987년 출범한 라이고 프로젝트의 설립자로 검출기를 설계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드레버는 말년에 치매로 고생하다 올해 3월 7일 타계했다. - 칼텍 아카이브 제공
어릴 때부터 전자장치를 만드는 걸 좋아했던 로널드 드레버는 1987년 출범한 라이고 프로젝트의 설립자로 검출기를 설계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드레버는 말년에 치매로 고생하다 올해 3월 7일 타계했다. - 칼텍 아카이브 제공

치매 심해 발표회장에도 못 나가


한편 올해 노벨물리학상도 한 사람의 죽음으로 위원회가 편안한 마음으로 수상자를 선정할 수 있었다. 즉 중력파 검출을 한 라이고(LIGO) 프로젝트의 설립 멤버 세 사람 가운데 한 명인 로널드 드레버(Ronald Drever)가 지난 3월 7일 86세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해 초 중력파 검출 성공이 발표됐을 때 2016년 노벨물리학상은 정해졌다는 식의 말이 많았다. 필자는 당연히 설립 멤버인 드레버와 라이너 바이스, 킵 손이 받을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고체물리 분야가 선정됐다.


올해에야 중력파 연구가 선정된 걸 보면서 필자는 위원회가 사태를 관망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즉 설립 멤버 세 사람을 선정하기에는 1994년부터 라이고 2대 소장으로 프로젝트를 이끈 배리 배리시의 기여가 너무 컸고 이런 와중에 드레버가 중증의 치매로 투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레버가 지난해 중력파 검출 발표장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이유다.


창립 멤버 세 사람을 선정하는 게 모양새는 가장 좋지만 어차피 드레버는 시상식에 오지 못 할 것이고 어쩌면 자신의 수상 사실도 인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실제 시험관아기 연구로 201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단독 수상한 로버트 에드워즈는 당시 85세로 치매가 심해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고 아내가 대신 수상했다. 2008년에 찍은 그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보면, 2년만 빨리 선정됐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첫 시험관아기가 태어난 게 1978년인 걸 생각하면 더 아쉽다. 에드워즈는 2013년 타계했다.)


학술지 ‘네이처’ 4월 20일자에는 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미국 MIT 바이스 명예교수가 쓴 드레버의 부고가 실렸다. 이를 바탕으로 그의 삶과 업적을 살펴본다.


1931년 영국 비숍턴에서 태어난 드레버는 공학자인 삼촌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전쟁 잔해로 TV수신기를 조립하며 놀았다. 초중고 시절에는 공부와 인연이 멀었지만 글래스고대에 들어가 두각을 나타내 핵물리학으로 1958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 주제는 핵붕괴를 측정하는 방사선 계수기 개발로 그가 손재주가 뛰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글래스고대에서 강사로 지내며 드레버는 이론물리학자들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확인할 수 있는 실험을 구상하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냈다. 그러던 중 1969년 미국 메릴랜드대 조제프 웨버 교수가 은하중심에서 중력파를 검출했다는 소식을 접한 드레버는 더 정밀한 장비를 만들어 이 결과를 재현해보기로 했다. 웨버의 데이터는 신호가 아니라 노이즈(잡음)일 가능성도 컸기 때문이다.


드레버는 웨버의 바(bar) 검출기보다 감도가 높은 버전을 만들었지만 중력파 검출에 실패했고 1970년대 초 이 방법으로는 희망이 없다고 선언했다. 이 무렵 MIT의 바이스 교수는 레이저 간섭계의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었고 드레버 역시 이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는 독일 연구자들과 레이저의 품질을 높이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런 와중에 한 학회에서 이론물리학자인 칼텍의 킵 손 교수를 만났다. 중력파 검출을 놓고 바이스 교수와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던 손 교수는 드레버도 레이저 간섭계의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쪽으로 가닥을 잡는다. 그 뒤 손 교수는 드레버를 칼텍으로 영입했고 둘은 40m짜리 중력파검출기 원형을 제작한다. 바이스 역시 MIT에서 검출기 설계에 들어갔다.


1983년 MIT의 바이스와 칼텍의 손과 드레버는 손을 잡고 라이고(LIGO. 레이저간섭계중력파관측소의 약자)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장치 설계를 두고 실험물리학자인 바이스와 드레버의 입장차가 워낙 커 일이 진전되지 않자 연구비를 대는 미국립과학재단(NSF)이 해결책을 촉구했고 결국 칼텍의 로커스 보트 교수를 초대 소장으로 영입해 1987년 라이고 프로젝트가 출범했다.


바이스는 부고에서 드레버가 라이고의 개념을 확립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인정하면서도 글 말미에 두 사람 사이가 얼마나 험악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아무튼 한 사람은 평생의 염원인 중력파를 검출하는데 성공하는 모습을 본 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다른 사람은 덤으로 노벨상까지 받게 됐으니 이게 인생이 아닌가 한다.


“난(바이스) 광학 공동(optical cavity)을 이용하는 문제에서 드레버와 의견이 달랐다. 여기서는 그가 옳았다. 난 고체상태 레이저를 밀었지만 그는 아르곤 레이저를 고집했다. 여기서는 드레버가 틀렸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