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6-19 20:24
[건강한 삶] [내 마음은 왜 이럴까?] ⑨ 거짓 미소는 나쁜 것이다?
 글쓴이 : happy
조회 : 12  

[내 마음은 왜 이럴까?] ⑨ 거짓 미소는 나쁜 것이다?

2017년 06월 18일 10:30

네 줄 요약
1. 포유류는 다양한 종류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
2. 기쁨과 친근함의 표현으로서의 웃음은 영장류 진화 이후에 나타났다.
3. 인간은 기쁠 때 웃고 친근할 때 미소 짓는다. 하지만 그 반대도 가능하다.
4. 일단 웃으면 기뻐지고, 다른 이에게 미소 지으면 쉽게 가까워질 수 있다.
 


‘웃는 여잔 다 이뻐(김성호 1집, 1989)’
. 제목만 들으면 다분히 성차별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는 이 노래를 기억하시나요? ‘여자만 웃어야 하냐!’는 반발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2010년에 왁스가 ‘웃는 사람 다 이뻐’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리메이크하기도 했었죠. 그러나 성차별적이라는 우려와 달리(?) 가사는 아주 아름답습니다.


“친절하게 웃음 짓는 귀여운 그대와 눈 마주치면

나는 어쩔 줄 모르고 가슴만 두근거려.

왜 그런지 나는 몰라. 온 세상이 아름다워.

내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인간은 왜 웃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미소 띤 얼굴을 좋아할까요?

 


감정의 종류


웃음은 감정의 표현입니다. 감정은 모든 포유류에서 관찰되는 보편적인 신경 현상이죠. 하지만 ‘하등’ 동물일수록 감정의 종류는 제한적입니다. 원시 포유류도 불안이나 분노를 느낍니다. 하지만 정교하고 복잡한 감정은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유명한 행동주의 과학자 존 왓슨은, 인간도 단 세가지 종류의 감정(공포, 분노, 사랑)만을 지니고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성장하면서 점점 많은 감정으로 분화한다는 것이죠. ‘얼굴의 심리학’의 저자이자 감정학의 대가인 폴 에크먼 박사도 인간은 여섯 종류의 기본적 감정만을 가진다고 주장했죠. 기쁨, 경악, 분노, 슬픔, 공포, 혐오입니다. 여기서 경악을 빼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의 종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복잡하고 다양한 문화적 맥락 속에서, 사고와 감정은 복잡하게 결부되며 무수하게 많은 이차 감정을 낳습니다. 자부심, 자존감, 모멸감, 도취감, 무덤덤함, 애석함, 아쉬움, 허영심, 교만심, 호기심, 기대감, 절망감, 우월감, 권태감, 유머감 등 다 언급할 수 조차 없습니다. 게다가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보죠. 데이트를 마친 연인이 서로의 집으로 향합니다. 아쉬운 마음에 돌아보는데, 그녀도 같은 생각이었나 봅니다. 눈이 마주친 연인은, 서로 미소 짓다가 웃음을 터트립니다. 이 때의 느낌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요? 그저 ‘기쁨’이라고 한다면, 정말 ‘하등’한 설명입니다. 

 

기본적 인간 감정은 6-7개 정도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는 사회문화적 맥락과 상황, 사고 내용과 결합하면서, 무수히 많은 종류의 감정을 낳는다. - pixabay 제공
기본적 인간 감정은 6-7개 정도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는 사회문화적 맥락과 상황, 사고 내용과 결합하면서, 무수히 많은 종류의 감정을 낳는다. - pixabay 제공

영장류의 웃음


웃음은 기쁨이라는 감정의 신체적 표현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비웃음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기쁨과 즐거움의 감정을 웃음이라는 형태로 드러내게 됩니다. 기쁘면 웃는 것은 당연하죠. 하지만 그렇게 당연하지 않습니다.
사실 웃음은 고등 영장류에서만 관찰되는 아주 독특한 현상입니다.


다윈은 웃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기쁨과 즐거움의 신호로서 웃음은 오랜 옛날 인간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임에 분명하다. 많은 종류의 원숭이들이 기쁨을 느끼면 반복적인 소리를 내는데, 이는 인간의 웃음소리와 아주 비슷하다. 게다가 흔히 턱과 엉덩이도 같이 떨곤 한다.
-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에 대하여, 찰스 다윈. 1872년


즉 인간과 침팬지의 공동 조상들도 웃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찰스 다윈은 웃음을 제외한 복잡한 감정은 인류가 진화한 이후에 나타났다고 믿었습니다. 예를 들면 부끄러울 때 얼굴이 빨갛게 되는 반응들입니다.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수치심과 죄책감은 인간 고유한 감정 반응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먹고 나서야 수치심을 알게 되었죠. 그러고보니 벌거벗었다고 부끄러워하는 동물은 한번도 본 일이 없네요.


침팬지의 웃음은 인간과 조금 다릅니다. 치아를 드러내며 씩 웃는 표정(silent bared teeth display, SBT)과 입을 활짝 벌리는 표정(relaxed open mouth display, ROM)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두 표정은 약간 다른 상황에서 나타납니다. 즐겁게 놀고 있을 때는 주로 ROM, 즉 입을 크게 벌리고 웃습니다. 그러나 친근한 동료를 만났을 때는 SBT, 즉 입꼬리를 올리며 싱글거립니다.

 

인간의 웃음과 침팬지의 ROM (relaxed open mouth display). 동일한 진화적 기원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 http://slideplayer.it/slide/940568/ 제공
인간의 웃음과 침팬지의 ROM (relaxed open mouth display). 동일한 진화적 기원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 http://slideplayer.it/slide/940568/ 제공

굳이 나누자면 하나는 미소, 다른 하나는 보통 웃음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네요. 사실 사람은 미소와 웃음을 크게 구분하지 않습니다. 정말 즐거울 때도 살짝 미소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친구를 만났을 때 크게 입을 벌리고 웃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물행동학자 반 후프의 주장에 따르면 미소와 웃음의 기능은 상당히 다릅니다. 특히 침팬지의 SBT, 즉 미소는 다양한 기능이 있습니다. 친근함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복종과 두려움의 표현이기도 하고 상대를 달래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거짓 미소? 거짓 웃음?


미소와 웃음은 비슷한 감정 반응이지만, 분명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반 후프는 인간의 미소와 웃음은 같은 감정을 표현한다고 했습니다. 분명 미소를 지을 때와 크게 웃을 때의 ‘내적’ 감정은 비슷합니다(강도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즉 기쁘고 행복하고 다정하고 유쾌한 기분이죠.


하지만 인간은 침팬지보다 훨씬 복잡한 인지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진짜 감정이나 생각과 다른, 메타 감정이나 메타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예를 들어 별로 가깝지 않았던 분의 장례식을 간다고 생각해봅시다. 솔직히 말해서 별로 슬프지 않습니다. 하지만 ‘슬퍼야’ 합니다. 슬프지 않은데, 어떻게 슬퍼할 수 있을까요? 거짓으로 슬픈 표정만 짓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사실 슬프지 않지만’, 동시에 ‘슬플’ 수 있는 능력, 즉 이중적 감정과 생각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어느 한계를 넘으면 이런 이중적인 감정 상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정말 사랑하는 배우자가 죽었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의도적인 ‘기쁜’ 감정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죠. 망사티를 입고 온 조문객을 보고 웃음을 터트린 상주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감정이 너무 압도적이라면, 다른 소소한 감정은 모두 휩쓸려 나갑니다.

 

인간은 거짓 미소, 거짓 웃음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이런 능력은 남을 속이려는 ‘가식적’인 목적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려는 목적에서 발달했을 가능성이 있다. - https://beyondphilosophy.com/emotional-labor-employees-and-customer-experience/ 제공
인간은 거짓 미소, 거짓 웃음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이런 능력은 남을 속이려는 ‘가식적’인 목적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려는 목적에서 발달했을 가능성이 있다. - Colin Shaw(beyondphilosophy.com) 제공

아무튼 인간은 소위 ‘거짓’ 미소와 ‘거짓’ 웃음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이런 사실(타인이 나에게 거짓으로 미소짓거나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소와 웃음은 사회적 의례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음식점 점원의 미소는 ‘진정한’ 정다움의 표현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기만 전술도 아니죠. 손님을 친구처럼, 환영한다는 신호죠. 부장님의 아재 개그에, 배꼽이 빠져라 웃는 김대리도 역시 ‘진정으로’ 유쾌한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위계를 존중한다는 신호입니다.

 


감정과 사고의 양방향성


물론 ‘이런 가식적인 미소와 웃음은 정말 싫다!’는 분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감정을 동시에 느낄 때, ‘우리의 뇌’는 어떤 감정이 ‘진짜’ 감정인지 잘 알아채지 못합니다. 부장님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썰렁한 개그를 해서 도리어 화가 치솟는데 김대리는 가증스럽게 본심을 숨기고 웃는 것일까요? 아니면 솔직히 아재 개그가 좀 웃기기도 한데 평소 자신을 괴롭히던 부장님에게 웃어주는 것이 굴욕적으로 느껴져서 화가 나는 것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심층 정신분석이라도 받지 않는다면 이를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99명이 웃어도 나는 웃지 않는 1인이 되겠다’라며 근엄 맹세라도 한 것이 아니라면 조금 ‘헤프게’ 웃는 것도 필요합니다. 감정과 사고는 ‘양방향성’이 있습니다. 즐거워도 웃지만 웃어서 즐거워지기도 합니다. 팍팍한 하루를 살다 보면 뭐 그리 웃을 일이 많겠습니까? 별로 친하지 않아도 미소 지어주세요.
유치한 개그라도 웃어주세요. 미소가 서먹한 관계를 친근하게 만들고, 유치한 개그를 ‘빵’ 터지는 개그로 만들어 줍니다. 

 

White Whale Records. 60년대 미국 락밴드 ‘ The turtles’의 앨범 사진. 67년에 ‘Happy together’라는 노래로 큰 인기를 끌었다. 감정과 사고는 양방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이유 없는’ 웃음을 통해서도 기쁨을 느낄 수 있다. - Billboard 제공
White Whale Records. 60년대 미국 락밴드 ‘ The turtles’의 앨범 사진. 67년에 ‘Happy together’라는 노래로 큰 인기를 끌었다. 감정과 사고는 양방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이유 없는’ 웃음을 통해서도 기쁨을 느낄 수 있다. - Billboard 제공

앗. 여기서 ‘그렇다면 감정 노동을 당연시 하는 것이냐?’ 라는 항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분명 세상 누구에게도 친절하게 웃어주는 것은 좋은 미덕입니다. 감정 노동은 감정 자체를 상품으로 팔거나, 감정 실적을 평가해서 급여에 반영, 혹은 감정 자체를 계약하는 등의 행위를 말합니다. 즉 웃음과 기쁨 간의 자연적 상호 관계가, 웃음과 돈이라는 인위적 관계로 바뀔 때, 바로 감정 노동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돈 때문에 웃어야 한다면, 그렇게는 하지 마세요. 기쁨을 위해 웃는다면 좋겠습니다.


미소 짓고 웃어 주면 우리의 기분도 좋아집니다. 미소와 웃음은 상대를 즐겁게 하지만, 자신도 즐겁게 해줍니다. 웃을 일이 있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그 일이 웃을 일이 되는 것이죠.
웃을 일이 있으면, 크게 웃으십시오. 웃을 일이 없으면, 그래도 크게 웃으십시오. 웃으면 복이 옵니다.

 


※ 참고문헌
Cartwright, J., 2008. Evolution and human behavior, Cambridge, Mass.: MIT Press.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등을 저술했고, '행복의 역습'(2014), ‘여성의 진화’(2017)를 번역했다.

  •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parkhans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