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08-18 13:55
[일반] 공학윤리 문제 “명확한 판단기준 필요”
 글쓴이 : 주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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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윤리 문제 “명확한 판단기준 필요”

 

 


공학 연구자들에게 ‘윤리’와 ‘이익’이 상충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 명확한 가치 판단의 기준을 사회적으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대학에서의 공학윤리 교육은 물론, 학회가 제공하는 윤리 강령 역시 구체적 상황에 대한 개인의 책임 문제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공학교육학회 주최로 지난 13일 연세대에서 열린 ‘공학윤리 워크숍’에서 송동주 영남대 교수는 ‘한국공학윤리교육 현황’에 대해 이같이 밝히고 “공학자가 스스로 가치판단 기준을 세울 수 있도록 하는 체계적인 공학윤리교육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13일 연세대에서 열린 공학교육학회 워크숍에서 송동주 영남대 교수가 발표를 하고 있다. ⓒ한국공학교육학회



공학윤리교육, ‘연구자 스스로’ 해결법 찾게 해야

 

송 교수는 공학윤리교육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영남대, 건국대, 부산대 등 5개 대학의 강의 방향과 방법, 내용 등을 비교ㆍ설명하면서 “두 가지 이상의 도덕적 가치가 상충할 때 스스로 해결법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대학 공학윤리 교육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한기계학회와 전기전자공학회, 미국기술사협회 등 3개 단체가 제시하는 윤리강령을 비교하고 “학회 역시 회원들에게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기준을 제공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상황에 따른 책임 문제를 적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이같은 문제의 대안으로 공학자 개인에게는 ‘비판적 사고와 책임있는 행동에 대한 의지’가 필요하고 대학에는 ‘체계적 공학윤리 교육 방법’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연구집단에는 윤리적 문제 해결의 절차와 다양한 사례 개발 및 DB화를 강조했다.

 

▷ 준 후다노 일본 가나자와 공대 교수의 발표 모습. ⓒ한국공학교육학회

이어 발표한 가나자와 공업대학의 준 후다노 교수는 ‘일본의 공학윤리 교육 현황 및 사례’를 발표하고 “한국과 일본의 공학윤리 교육의 관점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일본 공학교육의 문제점으로는 인력 부족, 제대로 된 교재의 부재, 흥미 저하, 커리큘럼의 복잡성 등을 꼽았다.

 

후다노 교수는 “공학윤리교육의 개념 자체를 바꿔서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 상황에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의 방향을 바꿔가고 있다”며 이를 위해 2020년 완성을 목표로 체계적인 공학교육 시스템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공학 윤리 문제의 솔루션, 7단계 가이드(7SG)

그렇다면 실제 공학자가 연구현장에서 윤리 문제를 부딪쳤을 때는 어떻게 해결책을 찾아야 할까.

송 교수와 후다노 교수는 공학 윤리 문제의 솔루션으로 7단계 가이드(7-Step Guide)를 제시했다. 즉, 어떤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①윤리적 문제를 명확히 기술하고 ②사실 관계를 검토하며 ③관련 법령과 윤리강령, 이해관계자 등을 확인하여 ④고려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고 정리하고 ⑤대체 가능한 안을 검토한 뒤에 ⑥취해야 할 행동을 결정하되 마지막 7단계에서는 1단계부터 6단계를 재검토하라는 것이다.

송 교수는 예를 들어 IT 업체의 연구 실무자가 소프트웨어 아웃소싱 외주업체를 선정 권한을 갖고 있다면 역량이 다소 부족한 자신의 지인(知人)이 운영하는 회사를 선정할 것인가, 라는 윤리적 문제를 제시하고 이를 7단계 가이드에 대입해 설명했다.

먼저 지인의 회사로 선택할지, 최적의 회사를 선택할지, 두 개의 선택 범위를 설정(문제의 명확한 기술)하고 두 경우에 따른 기술력 격차를 비교하거나, 이 문제에 대해 사내에서 상담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는 등(사실관계의 검토)의 과정을 거친다.

또 회사 규정에 개인적 관계에 따른 계약금지 조항 또는 외주업체 선정을 위한 프로세스가 존재하는지 검토(법령ㆍ강령 확인)한 뒤 고려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개발하라는 것이다. 가령 무조건 지인회사로 결정하거나 무조건 제외하는 방법, 이와는 무관하게 회사 규정에 따라 공평하게 결정하는 방법, 또는 이 과정에서 미세한 기술력 혹은 금액의 차이가 난다면 지인의 회사로 결정하는 방법 등을 정할 수 있다. 또 각각의 경우에 따르는 문제와 대응 방안을 고려해 최적안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송 교수는 “윤리 문제 내의 사실적 쟁점, 개념적 쟁점, 도덕적 쟁점들을 분석해 공리주의와 도덕적 의무에 따르는 해결책을 선택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날 워크샵에서는 길베인 시의 환경공무원이 공학인으로서 환경오염에 무관심한 시장을 설득하고 폐수를 유출하는 기업인에게 제재를 가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길베인 골드(Gilbane gold)’를 시청한 뒤 의견을 교환하는 시간도 가졌다.

8월 12일과 13일 이틀동안 열린 이번 공학윤리교육 워크샵에서는 연세대, 영남대, 공주대, 한양대, 부산대 등 5개 대학의 공학윤리 교육의 현황을 발표하고 공학윤리를 주제로 한 토론회도 함께 열렸다.

 

연구윤리의 핵심은 현장에서 구해져야 연구윤리담론의 두 가지 문제
2011년 05월 16일(월)

과학과 인문학간의 학문적 간섭과 대화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는 두 학문이 겪어야만 하는 운명과 같다. 단지 필요한 것은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고 깊은 이해가 전제된 바탕에서 대화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충돌은 불가피하고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를 막거나 거부할 필요는 없다. 인류가 겪고 있는 여러 문제들은 소통이 부족한 곳에서 발생할 뿐, 소통의 가능성이 다양하게 열려 있는 곳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과학과 인문학의 학문적 충돌과는 별개로, 인문학의 과학에 대한 오해가 가장 자주 목격되는 영역은 사회 속에서 과학과 인문학이 조우할 때다. 실제로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과학에 대한 인문학적 오해를 경험하는 사례들은, ‘황우석 사태’, ‘광우병 파동과 촛불시위’, ‘천안함 사건’, ‘유전자 조작식품’, ‘생물 테러’, ‘지구 온난화’, ‘인간 복제’ 처럼 과학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이 사회 속에서 문제가 된다고 간주되는 것들이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2005년 황우석 사태 이후, 생명윤리라는 윤리학의 특수분과를 기점으로 과학윤리 일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황우석 사태’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과 ‘인간 복제’를 둘러싼 담론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같지 않다. 당연히 해결방식도 같을 수 없다. 둘은 전혀 다른 층위의 문제를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점을 인식하지 못한 채 ‘과학기술윤리’ 혹은 ‘연구윤리’라는 이름으로 모든 사안을 에두를 때, 과학이 지켜야만 할 윤리도, 과학이 사회 속에서 지니는 책임과 가치도 구출될 수 없다.

연구윤리담론의 첫 번째 문제, 개인과 구조

황우석 사태 이후 연구윤리에 관한 대대적인 지원과 함께 다양한 결과물들이 출판 혹은 시행되었다. 과학적 전통이 오래된 서구사회에서 이러한 논의는 긴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과학적 전통이 성숙할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한국사회에서는 이제서야 부랴부랴 대책을 세우느라 호들갑이다.

▲ ‘황우석 사태’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과 ‘인간 복제’를 둘러싼 담론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같지 않다. 당연히 해결방식도 같을 수 없다. 둘은 전혀 다른 층위의 문제를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윤리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수많은 인문사회과학자들이 이 주제를 파고들었다. 그렇게 출판된 연구서들과 대책들의 진정성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 번째 문제는 ‘연구윤리’를 개인화시키는 데서 발생한다. ‘연구윤리’를 개인화시키는 전략은 특히 전통적인 규범윤리학을 신봉하는 이들에게서 나타나는데, 이 전략은 원인분석 단계에서부터 큰 오해를 내포하고 있고, 따라서 그것으로부터 도출되는 해결전략조차 전혀 효과를 발휘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연구윤리’의 개인화 전략이란 연구의 부정행위를 연구자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그 해결방안에 있어서도 해당 연구자를 처벌하는 방식을 고수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전략은 ‘연구부정의 원인은 연구자의 윤리의식이 부재하기 때문이고, 이를 해결하는 방식은 연구자의 윤리의식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진단한다1.

이러한 학자들에 의해 주도된 연구는 우선 FFP(날조: Fabrication, 변조: Falsification, 표절: Plagiarism)와 같은 부정적인 사례들을 거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곳에서 윤리학자들의 외부적 간섭은 거부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환영 받아야만 하는 것이며 이는 과학의 자체검증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2.

하지만 과학자들은 외부의 간섭을 거부하지 않으며, 거부할 힘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사외이사의 존재가 폐쇄적인 조직의 부패를 막을 수 있다면, 과학윤리에 관해서 그런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도 과학자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문제는 그러한 외부개입이 부당하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자들이 내부의 문제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규범윤리의 전통에서 연구윤리를 바라보는 인문학자들은 연구자들의 윤리적 규범이나 표준을 세우는 것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방식이라고 믿는다. 학자에 따라서 다양한 견해가 난무하고 있지만, 통상적으로 올바른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 연구자들에게 요구되는 윤리적 규범으로는 ‘정직(honesty), 주의(carefulness), 개방성(openness), 자유(freedom), 공로(credit), 교육(education),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 합법성(legality), 기회(opportunity), 상호존중(mutual respect), 효율성(efficiency), 실험대상에 대한 존중(respect for subjects)’ 이 꼽힌다3.

그들은 이러한 원칙들을 준수할 때만 과학이 자신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며, 이러한 윤리원칙을 따를 때 비로서 과학이 가장 잘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연구윤리를 정착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해결과제로 제시되는 것은 대학이나 연구소마다 ‘연구윤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 연구윤리를 교육하는 것, 마지막으로 각 단체들이 연구윤리규범을 넘어 자체적인 연구윤리‘강령’을 제정하는 일이 된다4.

하지만 이러한 해결책이 자율적인 것이 아닌 타율적인 것으로 인식될 경우, 연구자들은 능동적인 행위자로서가 아니라 수동적인 행위자로서 윤리강령을 준수하게 되는 병폐가 발생한다5. 이러한 수동적 연구자들의 양산이 과연 진정한 연구자들의 윤리의식의 함양일 수 있겠는지 고민해볼 여유도 없이, 한국사회의 연구윤리담론은 이처럼 공허한 개인화 전략으로 치닫고 있다.

연구윤리담론의 두 번째 문제, 현장과의 괴리

“역사적으로 전문가들과 대중은 신문의 머리기사를 장식하는 과학의 부정행위에만 주목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과학의 진실성을 위협하는 좀 더 광범위한 행위들을 무시할 수 없다고 믿는다… 과학적 진실성에 관한 현재의 분석들에서 빠져 있는 것은 제도적, 시스템적인 구조를 비롯한 좀 더 광범위한 연구 환경에 대한 고려일 것이다... 이제 과학자 사회가 이러한 연구환경의 어떤 측면이 연구진실성을 지키기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인지, 어떤 측면이 개선될 수 있는 것인지, 나아가 어떤 변화가 과학의 진실성을 위해 가장 생산적일 수 있는지 고민할 때라고 믿는다6.”

연구윤리담론에서 개인화 전략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그것이 연구부정행위, 특히 황우석 사태를 계기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부정행위는 몇몇 나쁜 개인들의 문제로 환원되며,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개인의 윤리의식 함양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FFP를 강조하는 연구윤리 담론은 부정적 사례들만을 강조함으로써 연구자들에게 죄의식을 짊어지게 한다는 문제점을 넘어, 실제로 연구자들이 현장에서 겪게 되는 윤리적 딜레마들과도 동떨어져 있다는 심각성을 지니고 있다. 인문사회과학자들에 의한 과학의 오해, 그 중에서도 연구윤리를 둘러싼 담론의 두 번째 문제는 바로 ‘연구현장과의 괴리’다.

인문사회과학자들의 연구윤리 담론의 중심에는 언제나 날조, 변조, 그리고 표절이 위치하고 있다. 연구의 정직성은 연구자에게 중요한 덕목이다. 연구는 최대한 정직하게 공표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러한 원인분석은 현실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실제로 연구현장에서 연구자들이 마주치게 되는 윤리적 문제는 FFP가 아니기 때문이다.

황우석 박사처럼 심각하게 논문을 조작하고 왜곡한 사례는 극히 드물며, 실제로 과학적 진실성을 위협하지도 않는다. 연구의 현장에서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윤리적 딜레마를 느끼게 되는 ‘정상적인 부정행위(normal misbehavior)’가 더욱 심각하며 이것이 오히려 과학을 위협한다. 드 브리스(Raymond De Vries)의 연구가 이를 잘 보여준다.

▲ 연구윤리를 둘러싼 담론의 두 번째 문제는 바로 ‘연구현장과의 괴리’다. 

다양한 연구집단에서 선발한 51명의 과학자들에 대한 인터뷰로 구성된 이 연구에서, 과학자들이 실제로 현장에서 경험하고 있는 윤리적 문제는 날조, 변조, 표절 등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매일매일의 연구 속에서 과학자들에게 윤리적 문제로 다가오는 것들은 다음과 같이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7.

1. 데이터의 의미: 과학연구의 결과는 논문과 같이 정제된 형태로 연구자의 손에 쥐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호한 데이터를 만났을 때 연구자들은 윤리적 고민에 빠진다.

2. 과학을 둘러싼 규칙들: 현장의 과학자들은 점점 더 많은 규칙과 제약에 갇히게 되었다. 정부와 법률의 제약 외에도 연구윤리센터(IRB)에서 제시하는 수많은 규칙들은 과학자들의 연구의욕을 감소시킨다.

3. 동료들과의 관계: 과학자사회는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스승과 제자, 연구원과 보스, 테크니션과 박사과정, 공동연구와 선취권 등을 둘러싼 윤리적 갈등은 매우 빈번하게 과학자들을 괴롭힌다.

4. 연구의 압박: 연구비를 둘러싼 지나친 경쟁 때문에 연구자들은 더 이상 동료를 믿을 수도 없고 경쟁 속으로 매몰된다.

황우석 사태를 둘러싼 연구윤리담론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사건이 발생하게 된 구조적인 원인을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탐색하지 못하고, 이를 윤리적 각성이나 근시안적 해결책으로 무마하려 한다면 문제는 본질적으로 치유될 수 없다.

건강한 사회라면 구제역 사태나 배추 값 파동의 문제가 터졌을 때, 그러한 사건에 대한 감정적 여론을 조성하는 태도를 넘어, 본질적인 위기의 구조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제도적인 개선책을 내놓아야 한다.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반복되는 언론과 지식인들의 감정적 여론몰이만으로는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다.

근본적인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정부와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과 비난에 가려지기 십상이고, 그러한 감정적 동요가 사그라질 때쯤엔 다시금 사건이 반복된다. 황우석 사태를 둘러싼 인문사회과학자들의 연구윤리담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연구윤리의 핵심은 현장에서 구해져야 한다.

1. 김항인, ‘연구윤리의 윤리학적 고찰과 확산 방안’, 사회과학의 연구윤리 정립 방안 학술대회, 2007.

2. 한국연구재단교육과학기술부, ‘연구윤리의 이해와 실천’, 한국연구재단, 2011. 12-13쪽.

3.한국연구재단교육과학기술부, ‘연구윤리의 이해와 실천’, 한국연구재단, 2011. 18-20쪽.

4. 이러한 개인화 전략이 현실적 이해를 결여한 공허한 탁상공론이라는 것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현재 진행중인 연구윤리의 편향성과, 인문사회과학자들의 도덕적 해이에 있다.

우선 황우석 사태를 시발점으로 연구윤리 논의가 활성화되었다고 해서 대부분의 연구윤리센터가 생명윤리학자들로 도배되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연구윤리가 생명윤리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다음 논문의 통계자료를 참고할 것. "전국국공립대학교사회과학대학장협의회, ‘사회과학의 연구윤리 정립 방안 학술대회 자료집’, 2007."

과학윤리에 관해서는 도덕성과 같은 개인화에 치중하던 인문사회과학자들이 인문사회과학에서의 표절 문제를 거론할 때는 과도한 논문 스트레스와 같은 사회의 구조적 원인을 자주 거론하는 것도 흥미롭다. 또한 연구윤리의 문제가 과학자사회가 국가 및 산업과 연관되며 변화되었다는 구조적인 원인을 지적할 때에도, 이러한 문제를 모조리 과학에만 부과하는 편향성은 간과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황우석 사태를 계기로 촉발된 연구윤리 담론에서 인문사회과학자들은 얼마나 연구비나 사회적 이슈로부터 자유로웠는지 되물어야 한다. 연구윤리센터의 설립에 반대하지는 않더라도, 만약 그러한 센터들의 건립이 이처럼 근시안적, 비현실적 조건들 속에 함몰된다면, 또한 그것이 진정 과학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연구부정행위 사건을 통한 인문사회과학의 영역확장에 불과할 뿐이라면 과학에 대해 물었던 것처럼 인문사회과학자들 스스로에게 그 목적의 진정성을 되물을 수 있어야 한다.

과학기술의 윤리에는 도제관계나 연구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총체적인 문제들을 다루면서도 인문사회과학의 윤리에는 기껏해야 표절이나 중복게재 및 인용의 문제들만을 거론한다는 것은 자기기만이자 잣대의 이중성에 불과하다. 인문사회과학 연구실에서의 도제관계가 지닌 문제의 심각성은 과학기술 연구실에 벌어지는 것보다 조금도 나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윤리의 개인화에 충실한 인문사회과학자라면 먼저 스스로의 학문에 대한 문제부터 거론하는 것이 그 본령에 가까운 것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처럼 연구를 둘러싼 제도적/구조적 문제가 과학기술만의 것이 아님을 인식할 수 없다면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이러한 편향성을 보여주는 저술로는 다음을 참고할 것. "한국연구재단교육과학기술부, ‘연구윤리의 이해와 실천’, 한국연구재단, 2011." 특히 노골적으로 과학기술윤리를 위해서는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지원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구영모, ‘과학기술인 윤리강령의 실태 분석’, 과학기술정책지, 157 (2006)."

5.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견해는 윤리학자에게서 등장한다. "김항인, ‘연구윤리의 윤리학적 고찰과 확산 방안’, 사회과학의 연구윤리 정립 방안 학술대회, 2007."

6. Brian C Martinson, Melissa S Anderson and Raymond de Vries, ‘Scientists behaving badly.’, Nature, 435 (2005), 737-8.

7. R. De Vries, M.S. Anderson and B.C. Martinson, ‘Normal misbehavior: scientists talk about the ethics of research’, Journal of empirical research on human research ethics: JERHRE, 1 (2006), 43.

김우재 UCSF 박사후연구원

저작권자 2011.05.16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