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6-19 15:00
[뉴스] [르포]"우리같은 농민들은 과학자 못 믿어유~"
 글쓴이 :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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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으로 인해 충남 예산군 예당저수지 인근 논밭이 갈라져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
가뭄으로 인해 충남 예산군 예당저수지 인근 논밭이 갈라져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우리같은 농민들은 과학자들 신뢰 못해유~. TV에서 떠들기나 하지 실제 농가에는 코빼기도 안보여요."(정병순 예산군 농민)

"과학으로 가뭄을 해결한다고요? 농가에서는 과학적 혜택을 한 번도 받지 못했는걸요."(신경호 예산군 안전관리과 과장)

저수지 물이 마를 대로 메말라 바닥을 훤히 드러내고 있다. 물 위에 떠 있어야 할 낚시용 좌대가 저수지 바닥에 놓여있다. 멸종위기 생물인 '귀이빨대칭이 조개'들은 입을 벌린 채 모래 사이에 죽어있다. 말라 비틀어진 조개떼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저수지 인근 농촌으로 향하니 상황은 더욱 가관이다.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밭작물들은 노랗게 타들어 고개를 푹 숙였다. 작물들이 파릇하게 자라고 있을 시기지만 그곳은 황토색 모래바람만 날리는 황무지로 변했다. 마늘이나 깨가 심어있는 밭도 상황은 마찬가지. 마늘은 알이 자라지 못했고 들깨 잎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그야말로 버려진 작물들이다. 

최근 가뭄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충남 예산군 예당저수지 일대의 상황이다. 말 그대로 심각 그 자체다. 농민들은 메마른 저수지와 논밭을 바라보며 그저 한숨만 내쉬고 있다. 외부 도움의 손길도 기다리다 지친 내색으로 고개만 좌우로 젓고 있다.

물 위에 떠 있어야 할 낚시용 좌대가 저수지 바닥에 놓여있다.<사진=강민구 기자 >
물 위에 떠 있어야 할 낚시용 좌대가 저수지 바닥에 놓여있다.<사진=강민구 기자>

지난달 예당저수지 저수율은 38.7%. 평년 저수율 67.9%의 절반가량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9% 수준으로 떨어졌다. 예산 지역 평균 강우량은 지난 달 115.7mm로 지난해 같은 기간 304.1mm에 비해 현저히 적다.

예산군 차원에서 금강 물줄기인 공주보 물을 예당저수지까지 끌어올 수 있는 터널을 뚫고 있지만 이또한 완공 시점이 확실하지 않다. 당장 말라가는 논밭 작물을 앞에 두고 속 시원한 물줄기를 기다리고만 있는 농민들은 속만 더 타들어 간다.

김승태 예당관광지 관리사무소 팀장은 "지난해 가을부터 지금까지 시원한 빗줄기 한 번 보지 못했다"라며 "예당저수지가 작년대비 3~4m는 줄었다. 이는 1978년 이후 40년 만에 찾아 온 대가뭄이다"라고 말했다.

◆ 농가에 과학자 신뢰 '제로'···"현장 모르니 기술 나오겠나"

가뭄피해 현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농민들은 과학자들에 대해 낮은 신뢰를 보였다. 예당저수지 인근에서 2000평 규모 밭농사를 하는 정병순 농민은 "과학기술로 농민을 돕는다는 이야기는 어림없는 소리"라고 딱 잘라 말했다.

민현규 농민이 가뭄피해를 토로하고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
민현규 농민이 가뭄피해를 토로하고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그는 "우리 농민들은 과학자를 1%도 신뢰하지 못한다"며 "TV나 라디오에서만 떠들기만 하지 농민을 찾아와 고통을 함께 나누기라도 했는가? 농가를 모르니 기술이 나오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예당군에서 60년 이상 농사를 지어왔다는 76세 김원기 농민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그는 "어떤 과학기술로 가뭄 문제를 해결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두 눈으로 본적이 없으므로 믿지 못한다"라며 "인간적으로 대책이 없다"고 한탄했다.

농가 뿐만 아니라 지자체 군청에서도 과학기술과는 거리가 멀다. 신경호 예산군 안전관리과 과장은 "군청과 농가에서 과학기술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라며 "물 문제로 농가들의 인심이 사라졌다. 과학자들이 인공비라도 내려주기를 바라는 심정"이라고 고백했다.

일흔살이 훌쩍 넘어서 밭 500평과 논 3200평을 관리하는 민현규 농민은 "저수지의 물이 반 이상 줄었다. 지난해까지는 저수지에서 흘러오는 물을 쓸 수 있었는데 올해에는 제한적으로 물이 방류된다"라며 "이미 밭작물을 심어야 할 시기를 놓쳤다. 메마른 땅으로 남아있다"고 토로했다.

◆ 의좋은 형제 마을···'의상한' 마을로?

예산군 대흥면은 '의좋은 형제 마을'로 알려져 있다. 형과 아우가 밤이 되면 번갈아 가며 쌀가마니를 서로의 집에 옮겨 두었다는 동화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이렇게 의좋은 형제 마을이 '의상한' 마을로 바뀌고 있다는 농담반 진담반 우려가 나온다. 원인은 '물'이다.

김원기 농민이 '의좋은 형제 마을'이 변질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

김원기 농민이 '의좋은 형제 마을'이 변질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김원기 농민은 "이웃 농가를 비롯해 형제 농가의 물을 몰래 길어오다가 언성 높이며 다툰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라며 "의좋은 마을이 '의상한' 마을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광옥 예산군 안전관리과 복구지원팀장은 "농가에서는 임시방편으로 개인 펌프를 이용해 하천물을 길러오고 있다"라며 "과거에는 자신의 논밭의 물을 지키기 위해 24시간 잠도 안자고 농가를 지키는 농민들도 여러명 봤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농촌 현장에는 극심한 물 문제로 '미신'을 믿어야 할 판국이다.

김원기 농민은 "지난 1950년대 논밭에 제비가 집을 틀고 세끼가 무사히 자라서 날아가면 단비가 내린다는 설이 있었다"라며 "60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서야 그 설을 떠올리며 논밭에 제비집을 억지로 만들어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지하수를 끌어올리려면 엔진이 필요하다. 엔진을 가동할 마중물 자체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벼를 늦게 심으면 재배 시기가 늦어 수출도 못한다. 이미 심었던 벼들도 모두 타 버렸다"라며 심각성을 알렸다.

◆ 지하수 관정보다는 '양수·담수 시설' 시급

왼쪽이 신경호 예산군 안전관리과 과장. 오른쪽이 최광옥 예산군 안전관리과 복구지원팀장.<사진=강민구 기자 >
왼쪽이 신경호 예산군 안전관리과 과장. 오른쪽이 최광옥 예산군 안전관리과 복구지원팀장.<사진=강민구 기자>

농가 현장에는 지하수 관정보다 양수와 해수 담수화 시설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최광옥 복구지원팀장은 "지하수 관정을 뚫어도 물이 안나오는 곳도 있다"라며 "관정을 뚫는다고 해도 수동 전기 펌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기적인 관리가 필요하지만 이또한 잘 이뤄지지 않아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낳고 있다. 관정을 뚫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오히려 양수 시설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권순현 예산군농업기술센터 작물환경 팀장은 과학기술인들에게 해수 담수화 기술 마련을 주문했다. 그는 "무분별한 관정 설치보다는 해수 담수화가 현실"이라며 "물의 염도 0.2% 이하면 농작물에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받는 서산 AB 지구 방조제의 물의 염도는 0.5~0.8 수준이다. 해수 담수화 기술이 가장 시급하다"고 의견을 냈다.

신경호 과장은 국가 물 문제 해결을 위한 '큰 맥락적 접근'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가뭄이 계속되면 현재 9%로 수준의 저수지 물도 말라버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인공비라도 뿌리고 싶은 심정"라고 우려하며 "물 문제는 해당 지자체 뿐만 아니라 정책입안자, 농민, 과학자, 전문가들이 국가 전체 차원에서 움직여야 한다. 흩어져 있는 관리체계에서 큰 맥락을 가지고 물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멸종위기 생물인 '귀이빨대칭이 조개'들은 입을 벌린 채 모래 사이에 죽어있다.<사진=강민구 기자 >
멸종위기 생물인 '귀이빨대칭이 조개'들은 입을 벌린 채 모래 사이에 죽어있다.<사진=강민구 기자>

지난달 예당저수지 저수율은 38.7%였다. 평년 저수율 67.9%의 절반가량에 불과하다.<사진=강민구 기자 >
지난달 예당저수지 저수율은 38.7%였다. 평년 저수율 67.9%의 절반가량에 불과하다.<사진=강민구 기자>

지난달 예당저수지 저수율은 38.7%였다. 평년 저수율 67.9%의 절반가량에 불과하다.<사진=강민구 기자 >
지난달 예당저수지 저수율은 38.7%였다. 평년 저수율 67.9%의 절반가량에 불과하다.<사진=강민구 기자>

밭작물들이 노랗게 타들어 고개를 푹 숙였다.<사진=강민구 기자 >
밭작물들이 노랗게 타들어 고개를 푹 숙였다.<사진=강민구 기자>

밭들이 황토색 모래바람만 날리는 황무지로 변한지 오래다.<사진=강민구 기자 >
밭들이 황토색 모래바람만 날리는 황무지로 변한지 오래다.<사진=강민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