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9-18 09:33
수집가의 철학
 글쓴이 :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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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가의 철학 휴대전화 컬렉터가 세계 유일의 폰박물관을 만들기까지

저자 이병철|천년의상상 |2019.08.05

수집가의 철학       


세월이 흐른 뒤 그 물건이 지닌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수집가의 몫이다!

3차, 4차 정보혁명을 목도하며 어느덧 70대가 된 여주시립 폰박물관 관장 이병철이 폰 수집에 얽힌 에피소드부터 쉽고 재미있는 전화기의 역사까지, 휴대전화 컬렉터가 세계 유일의 폰박물관을 만들기까지, 늘 우리 손에 붙어있는 폰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들려주는 『수집가의 철학』.

1, 2, 3장은 테마 에세이로서 유선전화, 휴대전화, 박물관 이야기와 함께 지은이가 휴대전화를 수집해 폰박물관을 세우고 나라에 기증한 사연을 담았고, 4, 5, 6장은 폰박물관 전시 유물 3천여 점 중 37점을 가려 뽑아 이동통신의 역사를 연대순으로 구성하면서 기기 하나하나의 얘기를 다뤘다. 휴대전화의 문명사적 위상과 거기에 얽힌 과학기술 이야기, 수집한 뒷이야기, 일상에서의 추억 위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 : 이병철
지은이 이병철 Byung-Chul Lee. 서울 목멱산 기슭 필동에서 태어나 휘문중고등학교와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기자와 글쓰기를 업으로 삼다가 2008년 경기도 여주시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휴대전화 전문 폰박물관을 열었다. 현재 여주시립 폰박물관World First & Only Mobile Museum THE PHONE 관장이다.

이병철은 1985년 첫 번째 저작 〈석주명 평전〉을 내놓았다. 그는 한국 나비 분류 체계를 바로잡은 석주명의 생애와 학문 이론을 밝히고 알리면서 30대 10년을 보냈다. 그것은 초등학생 때부터 우표를 수집한 그와 평생 60만 마리가 넘는 나비를 채집한 생물학자가 무엇인가를 모으고 분류하고 체계를 세우고자 하는 열정의 소유자라는 공통점에서 말미암은 필연이겠다.
그 뒤로 그는 10년마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곤 했다. 40대에는 탐험사, 50대에는 우먼리브와 우리말 문법. 그것들은 모두 자료를 엄청나게 수집해야 하는 일이었다.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해냈다. 결과는 그의 저서 열두 권 중에서 〈석주명 평전〉〈미지에의 도전 1,2,3〉〈세계 탐험사 100장면〉〈참 아름다운 도전 1,2〉〈우리 글 바르게 잘 쓰기〉에 오롯이 정리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휴대전화를 모아 체계를 세우면서 60대 10년을 폰박물관에서 보낸 사연과 소회를 〈수집가의 철학〉에 담아 내놓았다.

그는 아무 조건 없이 폰박물관 전체를 나라에 기증했다. 그 뒤 여주시가 박물관을 개관하는 데 어려움을 겪자 공채를 거쳐 관장에 취임했다. 사립을 경영하던 때나 공립을 운영하는 지금이나 그는 여전히 박물관을 찾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대한민국 산업유산 수집가이자 지킴이로 살아가고 있다.

내가 오랜 세월 열정을 바쳐 모은 유물을 나라에 기증한 것은, 내 컬렉션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개인이 소유하고 완상할 수준을 넘어선 컬렉션이니 내가 살았던 시대와 사람들을 기억해줄 우리 후손에게 넘기는 것이 옳다. 내 컬렉션이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면 나는 절대로 기증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문 83쪽, 〈스미스소니언을 생각하며〉에서



목차

■ 지은이의 말

제1장 그까짓 것 뭐하러 모으냐고?
세상에서 제일 착한 휴대전화
영화의 고증과 소품을 박물관이 도우면
옛날 영화에서 통신 역사를 발굴하다
남의 아이디어라도 쓰기 나름
휴대전화 플래시 예찬
칼과 도끼와 한국인
“한국에도 꽃이 핍니까?”
테제베 응어리를 풀다

제2장 수집에 바친 시간, 노력 그리고 작전
“용태 없다, 아침에 나갔다!”
유물은 수집가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스미스소니언을 생각하며
수집가의 안목이 역사가 된다
수집의 세 가지 원칙
폰박물관이라고 이름 지은 까닭
휴대전화ㆍ휴대폰ㆍ핸드폰
메시지를 때린다고?
‘쿼티 효과’ 덕에 장수하는 쿼티QWERTY
빨리 치겠다고 바늘허리에 실 매랴

제3장 미래는 가고 상상이 현실로
교환기에 울고, 교환기에 웃고
CDMA 상용화, 그 무모했던 열정
역사의 현장음
일곱 자 미스터리 1 ― 할 수 있다는 믿음
일곱 자 미스터리 2 ― 자꾸 보면 보인다
삼성과 애플, 삼성과 화웨이
SF영화, 공상에서 상상으로
“개방형 수장고에서 추억을 꺼내세요”
모두의 박물관이자 나만의 박물관

제4장 소리를 멀리 보내기 위하여
물 전화기를 아시나요?
에펠탑 전화기라고 불린 사연
“덕률풍으로 아룁니다”
고종의 전화가 김구를 살렸다
작은 불꽃에서 무선 통신이
워크walk하면서 토크talk하다
들고 다니면서handy 말하다talk
휴대전화에도 선사시대가 있다

제5장 호모 모빌리쿠스 탄생
삐삐, 어린 백성이 처음 가져본 모바일
셀룰러 없이 이동통신 없다
달 착륙 때까지도 못 만든 휴대전화
“휴대전화 허가증을 가지고 다니시오”
저 산이 마케팅을 도왔다
통신에서 정보통신으로
박물관에서 부활한 맥슨전자
삼성에 고한다

제6장 휴대전화 하나에 다 담았다
융합을 시작하다 ― 휴대전화+컴퓨터
e메일 중독자를 쏟아낸 블랙베리
듀얼도 혁신에 한몫 했다
“칙칙한 검정 폰 지겹지 않으세요?”
우리 디자인, 저들을 사로잡다
융합을 확장하다 ― MP3, TV, 카메라
세계 최초는 테스트용?
블루투스, 기계끼리 대화하다
아이폰이 세상을 바꿨다고?
■ 인용/참고 문헌



<출판사 서평>


그까짓 것 뭐하러 모으냐고?
수집가의 안목이 역사가 된다

어떤 물건이 이다음에 문화유산이 될지 당대에는 모른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물건이 지닌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수집가의 몫이다. 수집가가 수집하지 않은 물건은,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사건처럼 후세에 전해지지 못한다. 수집가의 안목이 역사가 된다. 이것이 나의 신념이고, 그 결과물이 휴대전화 박물관이다.

1. 수집가는 문화와 문명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는 사람이다
― 그가 모아 분류하지 않은 문화유산은 다음 세대에 전해지지 못한다

우리나라에는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휴대전화 전문 ‘폰박물관’이 있습니다. 이곳의 관장은 30년간 언론인과 작가로 지내다 ‘폰(phone)’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그까짓 것 뭐하러 모으느냐고”
우리 산업 문화유산 중 45%는 사라졌습니다. LG전자는 그들이 1959년에 처음 만든 A-501 라디오가 없어서 모형을 만들어 전시했다거나,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전시하려고 수십 년 전 에콰도르에 수출했던 것 중 하나를 사왔습니다. 1983년 이후 25년간 미국인의 삶을 가장 크게 바꾼 것은 휴대전화입니다(2007년 조사). 어느 나라를 조사했어도 결과는 비슷했겠지요. 휴대폰은 20세기 후반기 이후의 산업 유산 1호인 셈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까짓 것 왜 모으느냐고 합니다. 어떤 물건이 이다음에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세월이 흐른 뒤 수집가가 가치를 알아보고 잘 수집해 후세에 전해야 역사가 됩니다. 수집가가 수집하지 못한 문화유산은, 역사 기록자가 기록하지 못한 사건처럼 후세에 전해지지 못합니다. 수집가의 안목이 역사가 됩니다. 3차, 4차 정보혁명을 목도하며 어느덧 70대가 된 저자 이병철은 폰 수집에 얽힌 에피소드부터 쉽고 재미있는 전화기의 역사까지, 휴대전화 컬렉터가 세계 유일의 폰박물관을 만들기까지, 늘 우리 손에 붙어있는 ‘폰’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내 생애에 인류는 산업혁명을 벌써 두 번째 겪고 있다. 첫 번째는 1980년대에 컴퓨터와 인터넷이 주도한 지식정보혁명(3차 산업혁명)이었다. 지금 진행되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은 AIㆍSW+빅데이터ㆍ사물인터넷ㆍ클라우드가 대표하는 지능정보혁명이다. 3차,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기기들을 네트워크로 통합한 정보통신기술ICT 덕분에 가능했다. 그 선봉은 이동통신이다.
이동통신이 산업혁명의 기반으로 기능하면서 휴대전화는 어느덧 이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했다. 20년 전은 달랐다. 휴대전화란 쓰고 버리는 물건이었다. 문명사 관점에서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5쪽,〈지은이의 말〉에서

2. 첨단 문명을 탑재한 휴대폰, 문명사의 눈으로 바라보다
― 휴대전화 컬렉터가 세계 유일의 폰박물관을 만들기까지

1980년대 생물학자의 평전을 저술하고, 1990년대 세계의 고고학적 성과를 엮은 탐험사를 쓰고, 2000년대 여성 인물들의 삶과 우리말 글쓰기를 집필한 저자의 인문적 저력은 2010년대 폰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휴대폰은 쓰고 버리는 기계이지만, 우리 산업문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폰은 21세기 기계문명의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것이 인간 생활에 미친 변화는 가히 문명적 전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폰에 대한 역사적이고 문학적이면서 문명사적인 접근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소리를 멀리 보내기 위한 인류의 고군분투, 열정,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개인들의 사연, 사회문화적인 변동을 문학적인 글쓰기와 감성으로 담아냈습니다.
〈수집가의 철학〉 1, 2, 3장은 테마 에세이로서 유선전화, 휴대전화, 박물관 이야기와 함께 지은이가 휴대전화를 수집해 폰박물관을 세우고 나라에 기증한 사연을 적었습니다. 4, 5, 6장은 폰박물관 전시 유물 3천여 점 중 37점을 가려 뽑아 이동통신의 역사를 연대순으로 구성하면서 기기 하나하나의 얘기를 다루었습니다. 휴대전화의 문명사적 위상과 거기에 얽힌 과학기술 이야기, 수집한 뒷이야기, 일상에서의 추억 위주로 썼습니다. 전 세계에 휴대폰에 대한 책들을 보았지만, 이런 책은 없을 만큼 독특하고 독창적입니다.

무선호출기 등장은, 군대와 경찰만 쓰던 휴대용 이동통신 수단을 일반 대중도 가지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그것은 2m를 벗어 날 수 없었던 통신 공간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첫걸음이었다. 유선전화기와 송수화기를 연결한 선의 길이에 그쳤던 사람들의 행동 반경이 수백, 수천 km로 넓혀진 것이다. 모바일 통신 수단을 얻은 인류는 그 옛날 불[火]을 얻었을 때처럼 새로운 진화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호모 모빌리쿠스(또는 호모 ‘모빌리언스, 호모 모바일런스), 그 원년元年은 1974년이었다. 본문 245쪽, 〈삐삐, 어린 백성이 처음 가져본 모바일〉에서

3. 한국의 긍지! 후세에 전할 사명이 있다
― 이름 없는 사물에 시선을 주고, 그 흔적을 보존하는 수집가

2008년 8월 초 일본 요미우리 신문 기자가 저자를 찾아왔습니다. 마에다 야스히로前田泰? 기자! 그는 여섯 시간이나 박물관에 머무르면서 집요하게 질문했습니다. 기자는 저자의 재정 상태와 관련된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정말 당신 돈으로 휴대전화를 수집했습니까?” “얼마나 들었습니까?”
이 질문을 듣는 순간, 세계에서 몇 개 없는 최초의 휴대전화 한 대를 사기 위해 수천만 원을 지불해야 했던 때가 떠올라 울컥했다고 합니다. 막내의 학교 입학을 1년 미루어야 했기 때문이었지요.
마에다 기자의 질문은 취재가 아니라 취조 같았다고 합니다. 부러움과 질투 아니었을까요! 일본은 세계에서 처음 셀룰러 방식 이동통신 서비스를 했을 뿐만 아니라 휴대전화에서도 우리보다 앞섰던 나라인데, 일본에도 없는 휴대전화 박물관이 한국에 처음 생긴 것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질문에 묻어있던 것입니다.
기자의 집요한 검증 끝에 나온 기사의 끝부분에 저자 이병철이 한 말을 인용했습니다. “世界が韓國製品の性能の高さを認めている. 携帶電話は韓國の ‘誇り’. 後世に?える使命がある.”(세계가 한국 제품의 성능과 품질을 인정하고 있다. 휴대전화는 한국의 긍지이다. 후세에 전할 사명이 있다.) ‘携帶大國の誇り?える’(‘휴대전화 대국’의 긍지를 전한다)라는 헤드라인을 단 기사가 요미우리 신문 17면에 실린 날은 광복 예순세 돌 되는 날이었다고 합니다.

2003년 경매 시장에서 처음 풀박스 사이먼을 보았을 때 내 심장은 그대로 멎을 것 같았다. 잠시 후 가격을 보았을 때는 숨이 목에 턱 걸렸다. 일단 물건을 잡아놓고 급히 은행을 찾았다. 그렇게 해서 꿈에도 그리던 사이먼을 샀다. 당장은 돈 걱정보다 그것을 손에 넣었다는 사실이 나를 들뜨게 했다. 사이먼을 받기까지 몇 주일은 1초가 3년인 양 마음을 졸였고, 받아든 날부터 또 몇 주일은 구름 위에 올라앉은 듯 몽롱했다. 세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 느낌인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이먼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까닭이다. 309쪽, 〈융합을 시작하다, 휴대전화+컴퓨터〉

4. 160여 컷의 다양한 폰 사진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1980~1990년대에 우리나라에서만도 천만 명이 넘게 애용한 무선 호출기(Pager, 삐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민간인이 널리 사용했던 이동통신 수단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삐삐. 지금이 야 과거 유물이 되어 버렸지만, 서른다섯 살이 넘은 사람에게는 온갖 추억과 사연이 깃든 애틋한 물건입니다. 〈수집가의 철학〉에는 소리(phone)를 멀리(tele) 보내려 발명한 수많은 폰 사진이 풍부하게 실려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씌어진 글은 또 하나의 읽을 거리입니다. 무선통신부터 아이폰까지 거의 모든 폰 사진이 담겨 있는 〈수집가의 철학〉을 펼치면 자신만의 시간 여행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자 전송 담당 비서
MM-A700(맨위 사진); 음성 인식(Voice Signal) 기능. 사용자가 문자를 친 뒤 “이 문자를 존에게 보내줘”라고 명령하면 그대로 실행한다. SPH-A800(위 사진 왼쪽) SGH-P207(위 사진 오른쪽); 음성-문자 변환(STTㆍSpeech To Text)기능. 사용자가 “존, 잘있었니?”라고 말하면 그것을 문자로 바꾸어 존에게 보낸다. 38쪽

그리움을 모아서 연 박물관
옛날 유선 전화기가 조밀하게 들어찬 이 공간에 홀로 서면 흡사 정情처럼 하냥 번져오는 그윽한 것이 있다. 전화가 없던 시절에 겪었던 가지가지 사연들을 회상하노라면 그 다다름의 끝은 하염없는 그리움이다. 72쪽

무엇에 대한 믿음일까
회로기판 아랫쪽에 새겨진 ‘할 수 있다는 믿음’. 언제, 누가, 왜 써 넣었는지 모르는 저 글이 뜻하는 바를 푼다면, 삼성전자가 세계 1위로 올라선 힘의 원천을 알 수 있으리라. 151쪽

“박사님, 응급실로 빨리 오십시오”
뉴욕 마운틴 시나이 종합병원 의사가 핸디토키 라디오 페이저로 자기를 호출하는 메시지를 듣고 있다. 244쪽

“안테나를 튜닝하자!”
전화가 잘 안 걸리고 통화가 자주 끊기던 시절 소비자가 신경 쓴 것은 안테나였다.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번호의 자부심이 다릅니다. 011’ ‘수신 불량 지역에선 안테나가 저절로 쑥쑥’ “본부! 본부! 꺾을 수 있어서 편해” “안테나의 지존은 접시” ‘단추만 누르면 늘어난다. 286쪽

‘패션 광시곡’이라고 불렸다
젤리브리 시리즈 중 거울 기능이 있는 콤팩트 모양(가운데)이 제일 인기 있었다. 340쪽



<책 속으로>


영화계 사람들이 소품을 빌려 달라며 찾아오기 시작한 때가 2009년이다. 휴대전화를 주제로 영화를 만들겠다면서 제작자와 감독이 온 적도 있지만, 거개는 조감독 명함을 내미는 소품 담당자였다. 휴대전화를 빌려주어 결과가 좋았던 예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TV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다. 성사되지 않은 적도 몇 차례 있는데, 다 까닭이 있었다.
소품 담당자 A “1930년대에 일본군과 싸우는 독립군이 만주 의 한 동굴에서 통신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거기에 쓸 무전기를 빌려 주십시오.”
폰박물관 관장 “무전기는 1941년에 나왔으니 1930년대와는 맞지 않아요. 게다가 일본군도 없었던 무전기를 독립군이 어떻게 쓸 수 있었겠소? 시나리오를 고쳐 쓰는 편이 낫겠습니다.”
소품 담당자 B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쓰인 휴대전화를 빌려 주십시오.”
폰박물관 관장 “유물이 파손될 경우를 대비해 보증금 ○○만 원을 맡기십시오.”
소품 담당자 B “소품 예산이 부족해 맡길 돈이 없습니다.” --- pp.25~26

1985년 [리더스 다이제스트] 11월호에 실린 여섯 쪽 기사가 고고학에 대한 내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기계 문명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기사였는데, 산업혁명 이후의 기계 문명도 고대 왕릉에서 발굴된 유물처럼 인류의 문화유산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글은 1958년 닐 코슨즈라는 영국 청년이 1709년에 건설된 세계 최초의 철교를 건넌 얘기로 시작된다. ‘하룻밤 사이에 옛날 것들이 새것들에 밀려나고 있는 상황’에서 젊은 역사학도가 산업 유물을 보존하는 첫걸음을 내디딤으로써 산업고고학 탄생에 일조를 하고 1978년 열일곱 나라를 모아 국제 산업유 산 보존위원회를 탄생시킨 스토리이다. --- p.74

내 삶은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수집을 시작해 보니 날이 갈수록 초조해졌다. 며칠 전 보아 두었던 물건이 돈을 마련해 사러가면 사라지고 없었다. 유물은 수집가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수집을 시작한 시기가 조금만 늦었더라면 상당수 폰은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니 쉬엄쉬엄 할 수가 없었다. 닥치는 대로 돈을 구해 보이는 대로 사들였다.……시간, 노력, 돈 모두를 수집에 쏟아 부어 하루가 다르게 곳간을 채워가는 압축 수집이었다. --- p.76

수집의 세 가지 원칙. 그 하나…값을 깍지 않는다 --- p.92
그 둘…무조건, 당장, 현금으로 산다 --- p.93
그 셋…B600 원칙을 지킨다 --- p.94

다른 나라는 어떨까. 손으로 가지고 다니는(휴대) 쪽에 초점 을 맞춘 우리와 달리 서양은 통신 방식에 근거를 두고 있다. 미국은 이동(mobile), 유럽은 셀룰러cellular 쪽이다. 그렇다고 한 가 지로 통일된 것도 아니다. 초기 이동통신이 시작된 1921년부터 오늘날까지 미국에서 쓰인 용어를 보면 그 나라도 꽤 혼란스럽다. 디트로이트 경찰이 순찰차에 장착한 첫 이동통신 명칭은 모바일 라디오 서비스(MRS)였다. 1946년 더 개량한 모바일 텔레폰 서비스(MTS)가 나왔는데, 이때부터 모바일 텔레폰이라는 말이 널리 쓰였다. --- p.108

자주 다니면 길이 되고, 자주 쓰면 말이 된다. 일단 길이 되고 말이 된 뒤에는 바꾸기가 쉽지 않다. 전화를 ‘건다’는 말이 그렇다. 자석식 전화기 다음으로 수화기를 ‘들면’ 바로 교환수와 연결되는 공전식共電式(교환국과 가입자가 배터리를 함께 쓰는 common battery system) 전화가 나왔지만 ‘건다’는 말은 ‘든다’는 말로 바뀌지 않았다. 송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리는 자동식 으로 바뀌고도 건다는 말은 ‘돌린다’는 말로 바뀌지 않았다.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바뀌어 버튼을 누르게 되고도 전화는 변함없이 ‘걸고’ ‘걸렸다’. 터치식 휴대전화가 쓰이는 요즘에도 ‘건다’는 요지부동이다. 그렇다면 문자 메시지 보내는 행위를 문자 ‘날린다’ ‘때린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 p.111


‘할 수 있다는 믿음’. 수출에 도전한다는 다짐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나는 한밤중에도 문득 일어나 전시실로 가서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전문 지식도 없고 길잡이로 삼을 책도 없이 전문가의 길로 들어선 내가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 그것을 극복할 길은 실물實物밖에 없었다. 보고 또 보고, 자주 보면서 생각하는 것 말고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어느 날 문득 짚이는 것이 있었다. 1998년에 나온 다른 폰 몇 개를 분해했더니 ‘할 수 있다는 믿음’은 SCH-6200에도 있었다. SCH-800과 SCH-6200, 둘 다 폴더였다. 뭔가 실마리가 잡힐 듯했다. 왜 1998년에 나온 폴더형에만 그 글이 있을까. 무엇인가 번개처럼 스쳐갔다. 스타택! 스타택이 열쇠가 될 것 같았다. --- p.156

신라 토기와 휴대전화는 두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첫째, 토기는 거의 비슷비슷하지만 휴대전화는 기능과 모양이 다 다르다. 비주얼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둘째, 토기는 그것을 사용했던 사람이 볼 수 없지만, 휴대전화는 관람객이 자기가 사용했던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점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박물관에서 관람객이 자기가 썼거나 오래 쓰고 있는 물건을 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박물관들이 대개 100년이 넘은 유물을 전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폰박물관은 다르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썼던 물건을 발견할 수 있다. 얼마나 반가울까. --- p.179

엊그제 나는 스켈러튼 원조를 구했다. 송화구送話口(mouthpiece) 달린 쇠막대가 빙빙 돌아가는 아름다운 전화기. 우리나라에는 상륙한 적 없는 이 희귀한 전화기를 구하느라 나는 있는 힘을 다 쏟았다. 태풍처럼 몰아닥친 경기 침체와 고환율 시대에 누구나 탐내는 당대의 걸작을 사들이기란 보통의 결단으로는 어려웠다. 온갖 심리적 갈등을 겪고 나서야 나는 원조 스켈러튼을 구해 2호 스켈러튼 옆에 놓았다. 날마다 바라보고 쓰다듬고, 관람객에게 보여주어 탄성을 자아낼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을 겪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 p.199

나는 휴대전화를 수집한 지 2년쯤 지나서야 SCR-536이라는 존재를 알았다. 성능은 보잘것없지만 인류가 처음 가진 휴대용 무선전화기. 0세대 초창기 차량전화가 화석인류학에서 오스 트랄로피테쿠스 같은 존재라면, 0세대 중반기의 SCR-536은 화석인류학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같은 존재이다. SCR-536을 구하지 못하면, 0세대에서 1세대 아날로그에 이르는 과정에 화석인류학에서 말하는 ‘잃어버린 고리’가 생겨 계통을 나타내는 완벽한 목걸이를 만들지 못한다. 그런데 그 귀한 것을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SCR-536은 13만 개나 생산되었지만, 70년 가까이 지난 데다 군용물품이니 절대로 구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2009년에 구했다! 그 심정을 어떻게 표현 하랴! 도널드 조핸슨이 아파렌시스를 발굴했을 때 말고는 어떤 것도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으리라. --- pp.226~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