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3-11 19:12
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
 글쓴이 :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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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 일본 근현대 정신의 뿌리, 요시다 쇼인과 쇼카손주쿠의 학생들


저자 김세진|호밀밭 |2018.08.15


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       


• 야스쿠니 신사와 일본 우익사상의 뿌리,
일본 혼의 심장인 요시다 쇼인과 그의 제자들


요시다 쇼인은 지금도 수많은 일본의 리더들이 현재진행형으로 존경하고 있는 일본 근대 사상의 뿌리와 같은 인물이다. 일본의 극우 정치를 상징하는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 2013년, 요시다 쇼인의 묘지를 방문해 무릎을 꿇고 참배하며 ‘쇼인 선생의 뜻을 충실하게 이어가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2016년 말 국회에서도 요시다 쇼인의 ‘이십일회맹사’ 이야기를 인용했다. 요시다 쇼인이 활동했던 야마구치 현은 현재 아베 총리의 지역구이기도 하며 아베 총리의 좌우명 역시 요시다 쇼인이 그토록 강조했던 ‘지성’이다. 그의 제자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이는 근대 일본의 초대총리인 이토 히로부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처럼 중요한 인물인 요시다 쇼인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 그나마 ‘이토 히로부미의 스승’이며, ‘한반도를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을 집대성한 인물 정도로 알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 한일 양국의 외교 마찰을 상징하는 ‘야스쿠니 신사’가 원래 요시다 쇼인 등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실을 비롯해 그가 ‘교육의 아버지’로 불리는 페스탈로치와 동등하게 여겨지고 일본 우익사상의 아버지로도 여겨지며 독도영유권 주장과도 관련 있다는 사실 등에 대해 어둡긴 마찬가지다.
우리는 왜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요시다 쇼인에 대해 모르는 걸까? 한반도 역사와도 밀접하게 얽혀있는 그의 이름과 사상을, 그동안의 역사 수업에서 왜 한 번도 접할 수 없었던 걸까?

• 반일 감정에 가려져 있던 요시다 쇼인,
그의 생애와 행적을 낱낱이 알리는 한국 최초의 책


일본에는 요시다 쇼인에 관해 다룬 책이 직간접적으로 약 1,200여 종 가까이 발간됐다. 한국에는 그를 다룬 책이 단 한 권도 없다. 우리가 그동안 지피지기를 외치면서도 감정에 사로잡혀 행동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인들은 그를 사상가이자 혁명가, 근대 이후 일본을 지배하게 되는 걸출한 인물들을 기른 교육가, 일본 전국도 부족해 목숨을 걸고 해외로 나가려 했던 호기심 많은 탐험가, 결기 넘치는 글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린 문장가, 오직 일본을 위하는 마음을 지녔던 애국자, 행동으로 인간을 감화시킨 인간 등으로 기억하며 숭배한다. 메이지유신 150주년을 맞아, 우리가 그 사상적 기틀을 닦은 요시다 쇼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시다 쇼인과 그의 학교 쇼카손주쿠에서 함께 했던 제자들의 삶을 살피며 일본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더 넓고 큰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제껏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한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자신과 상대방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때 이해와 배려의 여지가 생겨나고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으며 사과, 용서, 화해 등으로 건강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역사의 주인이 되어 이끌어 갈 것인지, 아니면 남들이 만들어가는 역사의 손님이 되어 바라보고 끌려갈 것인지는 우리의 진지한 성찰과 지피지기(知彼知己)에 달려 있을 것이다.


저자 : 김세진

청년 김세진은 육군 항공장교의 아들로 태어나 전국 곳곳에서 자연과 함께 성장하고, 2007년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2011년 67기로 졸업하며 육군 소위로 임관한 뒤에는 28사단 최전방 GOP소초장, 22사단과 1야전군사령부의 재정장교로 복무한 뒤 정든 군문을 떠나 육군 대위로 전역했다.

전역 직후인 2016년 3월, 건명원(建明苑)에 입학하여 다양한 분야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고, 동양철학포럼의 젊은 연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이때부터 ‘요시다 쇼인과 쇼카손주쿠’를 연구하고자 일본어와 일본사 공부에 뛰어들어 일본 각지를 탐방하고 후지산 정상에도 발자국을 남기고 왔다.

건명원을 2기로 졸업한 뒤, 평소 스타트업에 대해 가졌던 관심을 바탕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던 중 핀테크 1세대 ㈜레이니스트에 합류했다. 지금은 뱅크샐러드 고객감동팀과 컬처팀을 함께 담당하며, 건명원의 ‘일본사, 요시다 쇼인’ 강의와 역사탐방활동을 이끌고 있다. 저서로는 육사 생도 생활 4년의 풀스토리가 담긴 『나를 외치다!』(2016)가 있고, 독자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며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있다. ‘따로 또 같이’ 길을 걷는 동료들에게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갖고, 하루하루 꿈꾸고 도전하며 나아가는 중이다.



목 차

여는 말

요시다 쇼인을 만나러 가는 길

1장. 에도시대와 조슈번(야마구치 현)
에도시대와 조슈 번(야마구치 현)
일본의 근현대

2장. 요시다 쇼인의 생애 ‘뜨겁게 불타오른 29년’
뜨겁게 불타오른 29년
요시다 쇼인의 사상

3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쇼카손주쿠
쇼카손주쿠
개인학교의 유행과 역할
쇼카손주쿠의 역사
학생 구성
수업 방식
교육 특색
평가
요시다 쇼인의 어록

4장. 쇼카손주쿠의 학생들 ‘일본의 새싹’
일본의 새싹

5장. 요시다 쇼인의 짙은 그림자
요시다 쇼인의 짙은 그림자
진정한 지피지기(知彼知己)를 위해

닫는 말
감사의 말
부록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 야스쿠니 신사와 일본 우익사상의 뿌리,
일본 혼의 심장인 요시다 쇼인과 그의 제자들

요시다 쇼인은 지금도 수많은 일본의 리더들이 현재진행형으로 존경하고 있는 일본 근대 사상의 뿌리와 같은 인물이다. 일본의 극우 정치를 상징하는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 2013년, 요시다 쇼인의 묘지를 방문해 무릎을 꿇고 참배하며 ‘쇼인 선생의 뜻을 충실하게 이어가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2016년 말 국회에서도 요시다 쇼인의 ‘이십일회맹사’ 이야기를 인용했다. 요시다 쇼인이 활동했던 야마구치 현은 현재 아베 총리의 지역구이기도 하며 아베 총리의 좌우명 역시 요시다 쇼인이 그토록 강조했던 ‘지성’이다. 그의 제자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이는 근대 일본의 초대총리인 이토 히로부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처럼 중요한 인물인 요시다 쇼인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 그나마 ‘이토 히로부미의 스승’이며, ‘한반도를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을 집대성한 인물 정도로 알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 한일 양국의 외교 마찰을 상징하는 ‘야스쿠니 신사’가 원래 요시다 쇼인 등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실을 비롯해 그가 ‘교육의 아버지’로 불리는 페스탈로치와 동등하게 여겨지고 일본 우익사상의 아버지로도 여겨지며 독도영유권 주장과도 관련 있다는 사실 등에 대해 어둡긴 마찬가지다.
우리는 왜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요시다 쇼인에 대해 모르는 걸까? 한반도 역사와도 밀접하게 얽혀있는 그의 이름과 사상을, 그동안의 역사 수업에서 왜 한 번도 접할 수 없었던 걸까?

● 반일 감정에 가려져 있던 요시다 쇼인,
그의 생애와 행적을 낱낱이 알리는 한국 최초의 책

일본에는 요시다 쇼인에 관해 다룬 책이 직간접적으로 약 1,200여 종 가까이 발간됐다. 한국에는 그를 다룬 책이 단 한 권도 없다. 우리가 그동안 지피지기를 외치면서도 감정에 사로잡혀 행동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인들은 그를 사상가이자 혁명가, 근대 이후 일본을 지배하게 되는 걸출한 인물들을 기른 교육가, 일본 전국도 부족해 목숨을 걸고 해외로 나가려 했던 호기심 많은 탐험가, 결기 넘치는 글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린 문장가, 오직 일본을 위하는 마음을 지녔던 애국자, 행동으로 인간을 감화시킨 인간 등으로 기억하며 숭배한다. 메이지유신 150주년을 맞아, 우리가 그 사상적 기틀을 닦은 요시다 쇼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시다 쇼인과 그의 학교 쇼카손주쿠에서 함께 했던 제자들의 삶을 살피며 일본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더 넓고 큰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제껏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한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자신과 상대방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때 이해와 배려의 여지가 생겨나고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으며 사과, 용서, 화해 등으로 건강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역사의 주인이 되어 이끌어 갈 것인지, 아니면 남들이 만들어가는 역사의 손님이 되어 바라보고 끌려갈 것인지는 우리의 진지한 성찰과 지피지기(知彼知己)에 달려 있을 것이다.


<책 속으로>

조슈번이 이백 년 넘게 에도막부에 대해 가져온 반감은 19세기 서양세력의 등장과 함께 촉발된 존왕양이 사상(천황을 받들고 서양세력을 물리치자)과 융합되어 젊은 사무라이들을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크게 영향을 준 강력한 지도자가 바로 요시다 쇼인이었다. 18

요시다 쇼인은 20대 초반의 3년 반 동안, 1만 3천 리에 걸쳐 일본 각지를 돌아다녔다. 각 지역의 풍습과 지형 등을 살피고, 다양한 학자들을 만나 함께 책 읽고 토론하며 시야를 확장시킬 수 있었다. 엄하게 처벌받을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일본을 구해야 한다’는 목표만 바라보고 움직인 쇼인의 도전정신과 용기 그리고 행동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고, 일본 곳곳으로 쇼인의 행적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50

2018년 현재 일본의 정치지도자인 아베 신조 내각총리대신은 야마구지 현(조슈번) 출신인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유명한 정치인이었던 자신의 아버지 장례식에서 쇼인의 글을 바탕으로 추모사를 낭독하기도 했다. 총리 재선에 성공한 직후인 2013년 8월 13일에는 쇼인의 묘지를 방문해 무릎을 꿇고 참배하며 ‘쇼인 선생의 뜻을 충실하게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2016년 말 국회에서 쇼인의 ‘이십일회맹사’이야기를 언급하며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임하는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한편, 도쿄의 헌정기념관에 걸린 역대 총리들의 좌우명이 걸려있는데 아베 신조의 좌우명은 쇼인이 그토록 강조했던 ‘지성’이다.(쇼인의 학생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의 좌우명도 이와 같았다.) 요시다 쇼인의 목소리는 그의 사후 160여 년이 된 지금까지도 일본 곳곳에서 메아리쳐 울리고 있다. 93

쇼인은 특히 조선을 침략하고 합병시켜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는데, 그의 제자인 기도 다카요시,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은 훗날 이 논리를 메이지정부의 주요 정책으로 발전시켰다. 특히 총리가 된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일본제국의회’의 첫 회의 자리에서 ‘일본의 이익선은 한반도’라고 주장하며 침략정책을 주도했다. 99

한편으론 일본을 군국주의로 이끈 인물들 중에 여럿이 포함되어있다. 그런데 오늘날 일본에서 ‘교육의 신’ 요시다 쇼인의 침략 사상과 폭력성 등은 잘 논의되지 않는 현실이다. 위대한 교육가, 사상가로 미화되며 그의 모든 주장이 ‘일본을 위하는 것’으로 합리화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침략주의에 의해 비극을 겪은 국가들은 이렇게 쇼인이 미화되는 현실에 대해 거북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요시다 쇼인과 쇼카손주쿠에 대한 이해가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자칫하면 감정적인 판단으로 빠지기 쉬운 이유이기도 하다. 교육의 성패와 명암을 모두 아우르기 위해선 예찬과 미화의 껍데기를 벗겨내는 것,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 모두 중요하다. 126

물론 쇼카손주쿠에서의 교육으로 모든 학생이 성공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국가지도자인 내각총리대신이 된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그리고 메이지 정부의 장관이 된 마에하라 잇세이, 야마다 아키요시, 노무라 야스시, 시나가와 야지로 등을 포함해 30.6%의 학생이 정치, 경제, 국방, 외교, 법률, 사회 등 각계에서 지도적인 인물이 된 것은 일본의 어떤 교육기관도 넘보기 힘든 성과였다. 132

일본의 우익사상과 역사 인식을 상징하기도 하는 야스쿠니 신사의 원래 이름은 ‘섬뜩하게도’ 조슈신사(長州神社)였다.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쇼카손주쿠 학생들과 조슈에서 태어난 인물들이 주도하여 1869년 8월 도쿄의 지요타 구에 조슈신사를 세우고 요시다 쇼인과 다카스키 신사쿠 등의 위패를 가져다 놓았다. 186

일본의 아마존 온라인 서점에서 요시다 쇼인의 이름을 입력하면 약 1,200여 권의 책을 찾아볼 수 있다. 반면 대한민국에는 요시다 쇼인을 주제로 다룬 책이 단 한 권도 없다. 일본의 역사나 사상을 다룬 책에서 잠시 쇼인이 다뤄지거나 역사학자들이 쓴 논문만 몇 편 있을뿐이다. 198

어제는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고 내일은 오늘 만들어가는 것이다. 일본과 건강한 관계를 맺든, 그들의 되바라진 행태에 대비하든,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비극을 막기 위해선 모든 선입견과 감정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제를 정확하게 바라보며 오늘을 비춰야 한다. 몰라서 당하는 것은 알고 당한 것보다 더 큰 죄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은 때’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이제라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지피지기(知彼知己)해야 한다.  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