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4-09 17:12
점자로 기록한 천문서
 글쓴이 : happy
조회 : 47  

저자 이용헌|천년의시작 |2016.11.21



책소개

이용헌의 시를 무엇이라 규정할 수 있을까. 이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그의 시는 일견 서정적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의 시를 보며 쓸쓸함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또한 개탄과 권태와 슬픔을 보게 된다. 그의 서정은 세계를 그려내고 세계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며 어두운 부분을 보고 개탄하며 나오는 감정과, 그 감정이 드러내는 아름다움과 슬픔을 통해 서정을 지속해낸다. 이는 어찌 보면 전통적 서정에 반하는, 현대의 세계에 대한 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시는 명백하게 슬프고, 명백하게 미학적이다. 그의 세계를 기록한 천문서는 보통의 글자를 통해 적히지 않는다. 하늘에 떠 있는 것들, 하늘에서 슬픔과 아름다움을 점명하는 것들을 통해서만 쓰여질 수 있는 것이다.


저자 이용헌은

광주光州 출생.

2007년 『내일을여는작가』 신인상으로 등단.

공학과 법학을 공부하였고 한국방송통신대

국문학과 졸업.

도서출판 돋을볕 주간.



목 차

시인의 말

제1부
그믐13
겨울 산14
무문관無門關16
뻘밭18
점자點字로 기록한 천문서20
안개주의보21
어느 오, 후22
비밀의 문24
묵지墨池26
夜話 혹은 野花27
삼청기원三淸棋院 관전기28
스파이럴 갤럭시Spiral Galaxy의 법칙 30
사과에 대한 미신32
미간眉間을 짚다34
마魔의 삼각지대36

제2부
지하 공단역41
양철지붕 이발소가 있던 자리43
그러니까 거기44
비수匕首46
거꾸로 핀 꽃에 관한 설화48
갈매기의 집50
오수午睡52
메이데이54
개화56
비 그친 오후58
남지나해에 새긴 낙서60
나팔꽃62
블라인드 테스트63
금성가구점66
무덤의 출처68

제3부
만추晩秋71
혹은72
갈치 레시피74
길 위의 연필77
푸른 무엇이 지나갔다78
우기雨期의 말문80
벼랑 위의 낮달82
시간의 그늘83
곡두84
초록나비의 우화86
바다의 문장87
선88
풀 위의 낙서90
獨居92

제4부
너의 나무였다95
그러하니 사랑이란96
겨울 부석사98
먼 그대99
하늘바다100
검은 밥그릇102
모니터는 알고 있다104
浮名107
일곱 시간의 노래 108
울음의 난해성 110
흰소리112
명중113
떠돌이들의 기준 114
작별116

해설
유성호 - 기원과 타자 탐구의 시적 진정성117



<출판사 서평>

추천사

이용헌 시인의 시집을 읽는 내내 “배가 고파요 어머니,/ 어느 해 겨울부터 어머닌 아버지를 깨우지 않았다”(「오수午睡」)는 문장이 떠나지 않았다. 독후에도 그런 감은 마찬가지였다. 왜일까. 시집을 앞으로 뒤로 연거푸 훑으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문장은 한 시인의 생애를 응축한 약전略傳이면서 동시에 시집의 무게가 집중되어 있는 중심축이었던 것이다. 결핍에서 채움으로 이동하려는 의지의 간난艱難과, 부재를 대체할 그 무엇을 찾아가는 몸짓의 신고辛苦가 집약된 요체였던 것이다. 이 시집의 세계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바큇살처럼 뻗어나가 골격과 육체, 피돌기와 호흡을 얻은 시들로 약동하고 있다. 시인의 생애도 이와 다르지 않을 터이다.
―안상학(시인)

이용헌의 지극한 말 부림은 상고尙古와 첨단尖端을 아우르는 늡늡한 서정의 옹립이자, 순정한 정신의 올곧은 지향과도 같다. 세상의 불가사의不可思議와 몰이해沒理解를 넘어서는 서정의 낙락한 취기, 이게 그의 시가 부어주는 온축蘊蓄의 술이다.
우리는 가끔씩 술을 따른다. 이 술은 적막일 때도 있고 달달한 징검돌일 때도 있으며, 묵묵한 눈물 언저리일 때도 있다. 그러나 태반은 사람임에도 여전히 그 사람이 처해진 변방을 조금씩 가슴으로 틔어보고자 하는 한낮의 먼동과도 같다.
나는 그와 그의 시가 거리와 술집에 내걸린 먼지와 술 얼룩이 번진 주련柱聯의 다정함과 슬픔과 결기의 쓸쓸함임을 안다. 그러나 도시와 술집이 망한다 해도 주련은 천문天文의 소슬한 광휘로 인정을 우는 가슴이면 족하다. 그의 성긴 머리엔 봉황의 눈독이 깊어지기 전 오동잎 모자를 씌우리라. 기약 없는 농담을 해도 좋은 벗이여.
자폐의 이기를 벗고 시정市井의 번뇌와 온기를 생득生得하는 시는 오늘의 가슴과 정수박이에 가만히 영혼의 한잔 술을 치는 일. 선한 시명詩皿이여, 천지사방에 번진 소소하고 광활한 천문天文의 벗들에게 흉금을 내어주는 소탈이여. 세상의 습습한 도道와 같은 박주薄酒에도 다정多情이 트인 그에게 떠도는 시마詩魔가 웅숭깊은 곁을 내주지 않을 리 없다.
―유종인(시인, 미술평론가)



<책 속으로>


끝내는
다 사라질 것이다

하늘엔
별빛만 반짝거릴 것이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적멸인가

2016년 가을 이용헌
---「시인의 말」중에서




은가락지를 입에 문 검은 새가 천공으로 날아간다

얼마나 날고 날았을까

슬픔의 무게로 기울어진 오른쪽은 닳아 없어지고

고독의 순도로 담금질한 왼쪽은 희미하게 남아 있다

은가락지를 떨어뜨린 검은 새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영겁을 물고 왔다 영겁을 놓고 가는 우주의 틈서리에서

소리를 잃은 말들이 침묵으로 반짝인다

한순간 나를 잃고 몸 밖을 떠돌던 내가

언약도 없이 당신을 맞는다

당신의 가는 손마디가 동그랗게 비어 있다 ---「그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