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3-06 15:24
바람이 시의 목을 베고 채형복 시집
 글쓴이 : happy
조회 : 56  

저자 채형복|한티재 |2016.11.14



권위주의에 맞서 싸우는 따뜻한 감성의 리얼리스트!

채형복 시인은 로스쿨에서 법을 가르치는 법학자이다. 경직된 법학을 전공한 사람이 긴장의 이완을 위한 여기(餘技)나 문화적 취향쯤으로 시를 쓰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에게 시는 그런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이 『시적 정의』(POETIC JUSTICE)라는 책에서 “시인과 판사가 하나 되는 세상이라야 공적 영역에서 정의가 세워진다”고 한 역설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사는 채형복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바람이 시의 목을 베고』는 우리에게 서늘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채형복의 시에 물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시에도 자연이 있고 계절의 오고 감이 있으며 가족과 추억이 있다. 또한 현재 자신을 둘러싼 일상이 있다. 때로는 간결하면서도 조촐하게 시에 수분을 주입하기도 한다. 그리고 삶의 서성거림 속에서 세상의 아픔과 깊음을 읽는 그의 맑은 눈이 보인다. 그가 체험한 생의 본질과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가을”의 “묵직한 중력”을 통해 사유된다.

채형복 교수는 권위주의에 맞서 싸우는 따뜻한 감성의 법학자이며 시인이다. 이 시집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 시대의 정신을 이끌어가는 영향력 있는 한 법학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 : 채형복
저자 채형복은 1963년 대구 성서에서 태어나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있다. 펴낸 시집으로 『늙은 아내의 마지막 기도』, 『우리는 늘 혼자다』, 『저승꽃』, 『묵언』, 『바람구멍』이 있다.


목 차

1부시선
시선 1
시선 2
시선 3
시선 4
시선 5
시선 6
시선 7
시선 8
시선 9
시선 10
민들레
나뭇가지를 자르며
낙화
가을
까치밥
겨울
늦가을에


2부비탄
부복
비탄
조선낫
오체투지
점?선
추락 1
추락 2
어둠
잡초
디아스포라
품위
국장일
허수아비
굴뚝
광란
시지프스
묵은 책을 정리하며
은둔과 유목의 경계에서
악몽

3부가면놀이
교수님 스타일 1
교수님 스타일 2
교수님 스타일 3
교수님 스타일 4
교수님 스타일 5
교수님 스타일 6
교수님 스타일 7
교수님 스타일 8
교수님 스타일 9
교수님 스타일 10
가면놀이
대학 정신
죽음서곡
독백 1
독백 2
독백 3
독백 4
독백 5

발문 · 권순진
시인의 말



<책 속으로>


시선 1

시인을 떠난 시는 
세상에 던져지는 순간
죽는다

세상은 
시를 묻는 거대한 무덤
죽은 시로 쌓은 백골탑

억누를 길 없는 시심
비탄의 강물 되어
시인의 가슴을 흐른다

죽은 시를 살릴 길은 단 하나
억겁으로 맺은 인연
눈 밝은 독자를 만나는 것

덜컹이는 시내버스
흔들리는 바깥 세상 젖은 눈으로 바라보며
졸시를 읽는 독자를 만난 날

시인,
죽은 시를 살리고
세상의 무덤에 눕다

- p 8~9.



대학 정신

모든 것이 돈으로 사고 팔리는
이 세상에서
돈으로 살 수 없고
돈에 팔려서는 안 되는
가치는 
정신이다
물건을 사도
정신과 함께 사야 하고
물건을 팔아도
정신과 함께 팔아야 한다
물건만 사고 팔고
정신을 사고 팔지 못 했다면
그 거래는 실패한 것이다

모든 것이 돈으로 사고 팔리는
이 세성에서
돈으로 살 수 없고
돈에 팔려서는 안 되는 
가치는
대학 정신이다
정신이 사라진 대학이
대학일 수 있는가
돈에 휘둘리고
돈에 굴복하는 대학이
대학일 수 있는가
시대 정신을 이끌 수 없다면
그 대학은 실패한 것이다

대학은 길이다
東으로, 西로, 南으로, 北으로
左로, 右로
위로, 아래로
사통팔달 통하는
허방의 길이어야 한다
물질이 정신과 섞이고 녹아들고
동양과 서양이 섞이고 녹아드는
실험과 해방의 공간이어야 한다
대학을 가두고자 하는가
길들이고자 하는가
통제하고자 하는가
그 사회는 이미 실패한 것이다


대화와 소통이 사라진 자리
강압과 불신이 가득하고
자유와 민주의 이상과 가치가 사라진 자리
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난다
타협할 수 없는
물러설 수 없는 자리
대학의 자유와 자치가 아니던가
정신을 버리고 얻은 물질로
대학의 갈 길을 열 수 있는가
궁핍하지만 비굴하지 않고
의연하고 당당할 수 있는가
시대는 대학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인가

- p 105~108.



시인의 말

시인이랍시고 폼 잡고
인생의 오욕과 회한에 젖은 시를 쓰면서
삶과 죽음에 목숨 걸어 본 적 없다면
이별과 사랑에 목숨 걸어 본 적 없다면
그는 가짜다

수천 수만 도 들끊는 신열로 가공의 신에 매달려
진리와 허위의 경계를 유령처럼 배회해 보지도 않고서
천지를 녹일 듯 분화구에서 뿜어져 나온 용암에
시인 흉내인들 낼 수 있으랴

시인은

폴리가미, 트랜스 젠더, 에이섹슈얼, 에고이스트,
자기망상피해자, 자기창조자, 자기파괴자
자신이 세운 왕국의 전제군주이자 독재자

너를 사랑하기에 죽는 것이 아니라
나를 죽도록 사랑하기에 산다

너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나를 죽도록 사랑하기에 시를 쓴다

             채형복

- p 145~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