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6-27 09:21
선 굵은 이야기꾼 조정래·황석영·최인호 돌아오자… 소설 안 읽던 아저씨 독자도 돌아왔다
 글쓴이 :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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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굵은 이야기꾼 조정래·황석영·최인호 돌아오자… 소설 안 읽던 아저씨 독자도 돌아왔다

  • 입력 : 2011.06.27 03:05

'황토' '낯익은 세상'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구매 독자 절반이 남성
가요계 '세시봉' 열풍처럼 중년 남성들 문화적 향수 자극
60대 작가 도전정신에 보내는 문학적 응원일 수도

20~30대 여성 독자가 주류인 문학 시장에서 '아저씨'들이 지갑을 여는 일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 아저씨들이 소설책을 사고 있다. 그들이 사는 소설은 조정래(68)·황석영(68)·최인호(66), 세 명의 60대 남성 작가의 신작이다. 문학적으로는 섬세한 내면보다 선 굵은 서사에 치중하며, 세대로 보면 자신의 젊은 시절 감수성을 형성하는 데 일조했던 이 트로이카에게 중년 남성 독자들이 남다른 애정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

◆50% 넘는 남성 독자 비율

교보문고 집계 결과, 지난해 소설 독자의 64.5%는 여성. 하지만 이 세 작가의 경우는 다르다. 한 달 전 출간된 조정래의 '황토'(해냄)는 55.7%가 남성 독자이며, 그 직전에 나온 최인호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여백미디어)는 46.8%,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문학동네)은 43.2%가 남성 독자였다〈그래프〉.

세대별로 보면 '중년 남성독자'의 약진은 더욱 두드러진다. 최근 5년간 40대 이상 남성독자들의 비율은 12% 내외. 하지만 '황토'는 38.6%,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30.5%, '낯익은 세상'은 24.9%가 40대 이상 남성 독자다. 판매도 돌풍이다. 5월 중순 출간된 최인호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26일 현재 출판사 집계로 11만부가 팔려나갔고, 5월 하순에 나온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 역시 초판 5만부를 소화하고 재판 2만부를 새로 찍었다. 조정래 '황토'는 1974년 발표했던 동명의 중편 소설을 장편으로 늘린 작품임에도 초판 1만부를 넘어 3쇄에 들어갔다고 했다. 한국 출판인회의가 집계한 지난주 베스트셀러 소설 부문에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와 '낯익은 세상'의 성적은 각각 2위와 3위. 해냄출판사 이혜진 편집장은 "신기하게도 직장 남성들이 문의전화를 많이 걸어온다"고 했고, 문학동네 조연주 편집부장은 "중년 남성 독자들이 움직였다는 것은 시장에서 '대박'이 났다는 뜻"이라고 했다.

◆내면을 넘어 세계와의 정면승부로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은 소위 꽃섬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치장한 쓰레기 매립장이 무대다. 자본주의 욕망 뒤에 숨은 온갖 쓰레기를 배설하는 곳. 최인호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어느 날 자고 일어나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의문을 가지게 된 K가 주인공이다. 속도와 양으로 모든 것을 압도하는 이 세계는 직장인 K에게 '분열'을 강요한다. 조정래 '황토'의 주인공은 여자지만,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조선의 사내들과 좌우(左右)라는 이념의 덫에 쓰러지는 지도층 사내를 통렬히 질타한다.

문학적 경향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이 등단했던 70년대부터 세 작가는 남성 서사문학의 상징적 이름이었다. 밑바닥 삶의 끈질긴 생명력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사회 모순이나 세계와의 정면 승부를 회피하지 않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인하대 김동식 교수는 "섬세한 내면과 감정 묘사도 중요하지만, 인간으로서 가치 있는 삶과 이 세계에서 어떻게 그 가치를 실현할 것인가에 더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 작가들"이라고 설명했다.

◆60대 청년 작가와 독자들의 응원

세대론으로 읽으면 이 60대 작가들은 또래 남성 독자들과 청년 시절을 함께 보내며 성장한 사이. '영원한 청년작가'라는 별칭의 최인호는 물론, 젊은 시절 조정래의 '태백산맥',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 등 주옥같은 중·단편을 읽었던 세대들이 이들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걸그룹·아이돌이 장악한 가요시장에
조영남·송창식·윤형주의 '세시봉'이 파열음을 낸 것처럼 고교시절부터 세 작가의 작품으로 감수성을 키워나갔던 독자들의 문화적 향수라는 것이다.

동시에 단순한 향수를 넘어 등단 이후 30년 넘게 끊임없이 변신하고 개척하며 뭔가를 만들어내고 있는 이 작가들의 도전정신에 중년 남성들이 호응을 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칠순을 코앞에 둔 나이에도 '왕성한 현역'인 조정래와 황석영, 또 암과 싸우며 장편 소설을 완성한 최인호에게 남성 독자들이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김동식 교수는 "직장인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한국사회의 남성들을 작가들이 위로하고, 독자들은 이 세 작가에게 문학적 응원을 보내고 있는 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