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11-10 09:54
잘못 든 새가 길을 낸다
 글쓴이 : happy
조회 : 3  

저자 강경호|시와사람 |2016.06.15

잘못 든 새가 길을 낸다


강경호 시집 『잘못 든 새가 길을 낸다』. 강경호 시인의 시는 행간에 폭력적 복선을 깔지도 않고, 시인만이 알 수 있는 기묘한 불구적 상징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의 시는 전통서정의 표현방식을 근저로 해서 자아 확인의 치열한 정신을 덧붙이고 거기에 시인을 둘러싼 세상을 향해 비판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 시집에는 '사람의 높이', '철 없는 복숭아나무' ,'꽃의 사원', '적막이 푸르다', '나팔꽃과 은방울꽃' 등 강경호 시인의 주옥같은 서정시들을 만나볼 수 있다.


강경호

1958년 전남 함평 출생.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1997년 월간 『현대시학』에 등단했으며, 시집 『언제나 그리운 메아리』『알타미라동굴에 벽화를 그리는 사람』이 있다. 계간 『시와사람』의 발행인이며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출강하고 있다.


목차

시인의 말

1사람의 높이

사람의 높이
철없는 복숭아나무
꽃의 사원
가지를 자르다가
적막이 푸르다
나팔꽃과 은방울꽃
굴뚝새가 살지 않는 집
가지를 치다
식사
무관심한 척
장마
이상한 밤
자벌레
건망증
나무의 신발
나무의 정신
겨울
나무의 침묵
나팔꽃
사소한 죽음
봄날의 각성

2잘못 든 새가 길을 낸다

잘못 든 새가 길을 낸다
푸른, 수력발전소

고요
도마

비둘기
추사체를 읽다가
도시가 푸르다
에이즈가 창궐하다
마을과 숲의 거리
흘러갔다
재생을 꿈꾸다
고물이 된 詩
허리 휜 리어카
십자가
은하열차
허물
산에 들다
완주
나무·활
거미줄

3아버지의 구두

아버지의 자리
아버지의 이
머나먼 천국
아버지의 구두
아버지의 지팡이
아버지의 땅
아버지, 어딜 가셨나
인간적인 생각
천국의 전화
감사시오
엿기름
구불구불
寒食
소쩍새
곡사포를 쏘다

4청색시대

청색시대
사라진 절벽
치사한 식사
상여집
겨울밤
집을 짓는다
내가 읽은 소설책

입에 식칼을 물다
앤디 워홀의 사랑
나무를 훔치다

|해설|
실존적 체험의 언어를 삶으로 받아들이는 시의 성자 / 김병호


<출판사 서평>

‘앵두나무’와 ‘직박구리’를 통해서 ‘사람의 손이 닿지 못하는’(「사람의 높이」) 무한을 읽어 내고 있다. 작위와 조작의 ‘사다리’를 치워내는 과감이 있다. ‘여름쑥부쟁이’와 ‘사마귀’의 ‘초록’을 ‘끈질긴 적막이 푸르다’(「적막이 푸르다」)고 읽는다. 그의 영혼의 탄소들, 그 저항이 금강으로 수렴되고 있다. 한 마리 ‘왜가리’까지도 ‘꽁꽁 언 강물을 뎁히고도 남는 차가운 정신’(「푸른, 수력발전소」)으로 영혼을 충전하는 ‘수력발전소’가 되고 있다. 얼핏 해학의 여유마저 보이는 그 에돌아감이 놀랍다. 그의 시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생명의 실체에 대하여 진중해지는 스스로에 신뢰를 갖게 된다. 발견의 깊이와 높이를 가늠하는 견자(見者, voyant)의 눈이 신선하게 살아 있다. 시의 근원인 절제의 미학 또한 자연과의 접합 운용을 야단스럽지 않게 전개하고 있다. 근간의 우리 시들이 지나친 난삽과 굴절 우회로 심층의 탐색을 빙자하거나, 그 같은 상황에 대한 저항과 기피로 시의 평범화 또는 상식화를 일삼아 긴장과 탄력을 잃고 있는 차제에 강경호의 시들은 좋은 견제가 되고 있다. 반갑다. 무엇보다 이번 그의 시집에서 우리는 그의 절제의 미학이 형식과 표현에 머물지 않고 고요와 냉정에 이른, 그래서 시의 관능과 사유를 조절하는 균제미의 성취에 있었음을 읽어내야 할 것이다. 반갑다.
- 정진규(시인)

강경호의 시는 기본적으로 독자 친화적 성격이 강하다. 행간에 폭력적 복선을 깔지도 않고, 시인만이 알 수 있는 기묘한 불구적 상징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의 시는 전통서정의 표현방식을 근저로 해서 자아 확인의 치열한 정신을 덧붙이고 거기에 시인을 둘러싼 세상을 향해 비판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즉 강경호의 시세계는 평이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이들과 구별이 되는 개성적 세계의 아름다움을 구축하고 있다. 이천년대 중반 미래파의 소동 이후 서정시는 마치 도산한 회사의 부도처리 제품 같은 편견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다시금 견고하게 복권되면서 문학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다. 이런 서정시의 최전선에 강경호 시인이 서있다.
- 김병호(시인, 문학평론가)


<책 속으로>

잘못 든 새가 길을 낸다

한 줄의 시도 못 쓰고 있을 때
길을 잘못 든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 한마리 날아들었다
놀란 새는 내 관념의 이마를 쪼다가
출구를 찾으려 발버둥 쳤다
책에 부딪혀 깃이 빠지고 상처를 입은
새를 바라보는 동안 행복했다
새는, 이 따위 답답한 서재에서는 못 살아 하며
푸른 하늘과 숲을 그리워하면서도 쉽게 나가지 못했다
두렵고 궁금하고 불량하고 불온하고 전투적인
피투성이가 된 새를 바라보는 동안
나도 피투성이가 되었다
새가 소설집 부딪치고, 시집에 부딪치고
진화론에 부딪치고, 창조론에 부딪치는 동안
산타처럼 무수히 많은 새끼를 낳는다
새는 겨우 출구를 찾아 날아가 버렸지만
새가 낳은 수많은 새끼들
내 마음의 서재에 살게 되었다
또다시 잘못 든 새가 그립다.
-p. 36


아버지의 구두

아버지 돌아가시자
누님이 유품 모아 불태워 버렸지만
내 구두인줄 알고 놔눈
고흐의 구두 같은 흙 묻은 구두

논두렁 받두렁
질척거리는 길 걸었을
내 마음보다 한 치수 품이 넓은 구두
닦아도 쉽게 빛이 나지 않는데

아버지의 지문처럼 뒷급 닳은 구두룰 신고
내 길을 가면
아버지의 등을 밟은 것 같아
꺽어 신지 못하고
함부로 돌멩이 차지 못해
조심스럽게 길 건너갈 것 같은 구두

철모르는 아들 안 잊혀
이승에 남아 함께 길을 걷는
낡은 아버지의 구두.
-p. 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