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9-18 16:38
굿 라이프
 글쓴이 : happy
조회 : 7  

저자 마크 롤랜즈|역자 강수희|추수밭 |2016.11.03
원제 A Good Life

굿 라이프

가상의 이야기에 담긴 20가지 딜레마에 대한 사유와 해답!

21세기 고전의 반열에 오를 베스트셀러 《철학자와 늑대》의 저자이자 모험적이고 열정적인 철학자인 마크 롤랜즈는 처음으로 픽션이라는 장르에 도전해 철학 소설을 완성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이 책 『굿 라이프』에서 ‘생명과 탄생, 종교와 신, 윤리와 거짓말, 부와 가난, 쾌락, 사랑, 죽음’ 등 가장 논쟁적인 20가지 딜레마에 대한 사유와 해답을 펼쳐낸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아들 니콜라이는 언젠가 물에 잠길지도 모를 고향 섬의 허름한 옛집에서 아버지가 쓴 의문의 원고를 발견한다. 실재인지 허구인지 모를 이야기 속에는 아버지와 너무 닮은 주인공 ‘미시킨’이 등장한다. 혼란에 빠진 니콜라이는 아버지가 완성하지 못한 원고를 대신 정리하면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간 한 인간과 마주하게 되는데…….


저자 : 마크 롤랜즈
저자 마크 롤랜즈 Mark Rowlands. 단연코 저자의 대표작인 《철학자와 늑대The Philosopher and the Wolf》는 ‘이성의 철학자’와 ‘야성의 늑대’의 기막힌 만남이라는 실제 경험담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숨겨진 야성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전하며 전 세계 20개 이상의 언어로 출간되었다. “누구나 마음속에는 늑대가 살고 있다”는 강함 울림을 던지는 이 책은 “역사적인 철학서”, “고전의 반열에 오를 철학서”로 꼽히면서 2008년 출간 이후 지금까지 전 유럽 아마존 베스트셀러, 최고의 인문서로 사랑받고 있다.
또한 저자가 두 자녀의 아버지로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쓴 《철학자가 달린다
Running with the Pack》는 ‘달리기’라는 극단의 도전 경험에서 비롯된 깨달음을 전한다. 자신의 나이든 몸과 마음의 상태를 실감하며 치열한 성찰로 완성한 이 책은 “고통 속에서 달리는 것은 자유의 경계에서 달리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다시 한 번 마크 롤랜즈만의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철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주요 전작들에서 실제 경험과 철학적 사유를 결합시키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 저자는 이번에는 ‘철학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 이 책 《굿 라이프A
Good Life》를 완성했다. 픽션의 주인공들과 그들의 삶 속에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생의 20가지 딜레마’를 다룬 이 책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다양한 철학적 논제, 사회적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치면서 “우리가 꿈꾸는 좋은 인생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의 해답을 찾아간다.
영국 웨일스 뉴포트 출신의 저자는 현재 미국 마이애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대표 저서로는 《철학자와 늑대》《철학자가 달린다》《굿 라이프》 외에 《동물의 역습》《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 등이 있다.

역자 : 강수희
역자 강수희는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는 마크 롤랜즈의 《철학자와 늑대》《철학자가 달린다》《굿 라이프》를 비롯해 《살아야 할 이유》《인생은 불친절하지만 나는 행복하겠다》《속도의 배신》《지금 생각이 답이다》《마음에 대해 달리기가 말해주는 것들》《미스터 두: 전략적 행동가》 등이 있다


목차

프롤로그 - 니콜라이로부터

1. 글 : 존재에 대해
2. 실레노스 : 인간은 태어나지 않았어야 했다?
3. 동물 : 계산, 동정심, 낙태
4. 거짓말 : 왜 윤리적이어야 하는가?
5. 신 : 없으면 안 되는가?
6. 대칭 : 올가와의 만남
7. 인격체 : 낙태의 윤리성
8. 선 : 올가_ 인격체에 대한 생각
9. 서브퍼스크 : 생각과 표현의 자유
10. 로토파고스족 : 마약과 쾌락주의
11. 부자 : 부의 분배
12. 빈자 : 올가_ 부자에 대한 생각
13. 규칙 : 공감, 동정심, 실용적 지혜
14. 사고 : 동물, 환경, 공감의 진화
15. 사랑 : 동정심의 윤리학
16. 금지 약물 : 효과 증대
17. 갈림길 : 죽음
18. 올가 : 올가_ 안락사에 대한 생각
19. 고백 : 자살
20. 무한 : 구원



<출판사 서평>


우리가 꿈꾸는 좋은 인생은 과연 무엇인가?

생각하며 사는 삶에 대한 뜨겁고 열정적이며 강력한 성찰
_로쟈 이현우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미시킨’.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어느 날 미시킨은 태어났고 또 다른 어느 날 죽음을 맞았다. 여느 평범한 인간의 인생사다. 또 다른 인물 ‘니콜라이’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허름한 옛집에서 아버지의 기록을 발견한다. 아들은 아버지가 쓴 원고 뭉치 속에서 아버지와 너무 닮은 미시킨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의 삶 속으로 점점 더 빠져든다. 니콜라이는 아버지의 자서전인지 소설인지 모를 원고를 편집하고 각주를 달아 책으로 만든다.

그대, 깨어나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마크 롤랜즈는 이 책의 서두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문장을 빌려 우리는 각자의 인생은 물론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생에 대한 책임, 그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질 수 있는 것일까? 이를 위해 저자는 미시킨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일생의 흐름에 따라 주요 사건들을 추적해간다. 불완전한 기억의 파편이 모인 기록 속에는 진실과 오해, 현실과 상상, 확신과 의심이 뒤섞이면서 수많은 생각과 의문이 끝없이 이어진다.

꼬리에 꼬리를 문 사유의 과정은 누군가의 머릿속을 고스란히 활자로 옮겨놓은 듯 길고 복잡하다. 살아 있는 철학자의 머릿속, 흡사 마크 롤랜즈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술 방식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은 인생의 목적이 함축해 드러난다. “내 삶에 목적이 있었다면 그것은 ‘사유’다. 증거를 수집하고 거기에 근거해 어떤 영향이 있는지 규명하고, 판단과 직관, 의견과 관점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사유는 철학의 본질이며, 그 중요성은 철학이 제일 강조해온 가치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철학의 힘이 약해진 시대에 마크 롤랜즈가 ‘생각하며 사는 삶’을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 역시 이론을 나열하기보다 실제 경험과 철학적 사유를 결합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는 오로지 끈질긴 열정으로 무모할 만큼 치열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생각의 끝이 어디인지 한번 끝까지 가보겠다는 의지가 대단하다. 이에 대해 서평가 이현우는 『굿 라이프』에서 “마크 롤랜즈의 성찰은 뜨겁고 열정적이며 아주 강력하다”라고 평했다.

삶을 예술과 같이 살라

마크 롤랜즈는 ‘생명과 탄생, 종교와 신, 윤리와 거짓말, 부와 가난, 쾌락, 사랑, 죽음’ 등 인간의 삶에서 가장 논쟁적인 20가지 딜레마를 선정해 ‘생각의 화두’로 삼는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테지만 코앞에 닥친 현실의 문제가 아니기에 끝까지 파고들지 못했거나, 논란의 여지가 큰 사회적 문제여서 좀처럼 건드리지 못하는 주제들이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픽션을 도구이자 방패로 삼았다. 이렇게 픽션과 철학이 결합된 ‘철학 소설’ 형식을 취함으로써 기존의 사상이나 논리, 상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 영국의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가 말한 것처럼 “아카데믹한 갑옷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셈이다.

아무런 제약과 염려 없이 생각에 몰두하기로 마음먹어서일까? 마크 롤랜즈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인생을 살아가며 내려야 할 수많은 결정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을 던진다. 이처럼 길고 긴 사유의 과정을 통해 내린 결론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무엇이 좋고 나쁜지, 옳고 그른지, 선한지 악한지에 대한 자신만의 답이다. 예컨대 ‘쾌락’에 대한 사유를 살펴보면 높든 낮든 쾌락은 모두 같다고 주장한 벤담이 옳은지, “배부른 돼지보다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주장한 밀이 옳은지 정답을 가르지 않는다. 그 대신 저자는 인간이 고통이나 쾌락밖에 알지 못한다면 “삶의 비참한 낭비”일 것이라 말한다. 진정 삶을 이해하려면 “삶에서 꿈꿔보지 못했던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가 깊이를 알 수 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삶을 예술과 같이 살라”고 니체가 말했듯 승리와 패배, 성취와 고난이 공존하는 인생에서 위대한 예술처럼 영감을 주며 역동적인 삶을 꿈꾸길 소망한다.

우리는 왜 태어났는가?

또한 마크 롤랜즈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 이전에 우리는 왜 태어났으며, 삶의 끝이 어디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질문을 던진다. 마크 롤랜즈는 인생의 처음과 끝에 관한 사유로 이 책을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소설 속에서 미시킨은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첫 번째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잉태되었는가?”

탄생 전의 잉태를 결정하는 기준이 무엇인가를 고민한 저자의 관점은 뜻밖에도 다소 회의적이다. 한 생명이 잉태는 부모가 원하거나 태어날 아이의 행복을 위해, 인류를 위한 일이거나 생식과 환경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 등의 이유 때문이다. 다만 저자는 잠재적 행복보다 잠재적 고통이 더 분명하다는 논리를 펼치면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 실레노스의 말을 강조한다.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쇼펜하우어 역시 “모든 삶에서 고통이 행복보다 클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면서, 미시킨은 자신의 잉태가 “지독한 실수”였다고 결론 내린다.

자신이 잉태된 것이 되돌릴 수 없는 실수라면 삶은 마지막까지 회의적인가? 그러나 ‘바깥세상에서 어머니의 품에 안겨 맛보는 첫 식사의 기쁨’은 모든 불안과 고통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이는 훗날 미시킨이 두 아이의 부모가 되는 순간 동일하게 느끼는 강렬한 감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감정은 ‘사랑’으로 확장되면서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자식을 향한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변하지 않으며 이 세상 모든 사람과 싸우더라도 지키고 싶은 감정이라는 것이다.

미시킨은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얼굴을 가진 ‘올가’와 사랑에 빠져 가족을 이루고, 파생상품 트레이더로서 흑마술과 같은 자본의 실체를 깨닫고, 올가와 함께 떠난 인도 여행에서 해시시를 판매하는 경찰서장을 만나는 등, 그의 인생은 니콜라이가 알지 못한 수많은 사건들로 가득했다. 기록되지 않았더라면 사라져버렸을 아버지의 삶은 아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엉망진창이었지만, 아들이 알지 못한 수많은 고민의 흔적들이 담겨 있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무엇보다 미시킨과 올가가 선택한 죽음의 방식은 과연 옳은 결정이었는가 하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올가는 말기 암 투병 과정에서 소극적 안락사인 ‘심폐소생술 금지’를 결심하고, 아내의 죽음 후 미시킨은 치매가 점점 심해지자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내 육체는 존재해도 숨만 쉬는 유기체로서의 삶은 더 이상 내가 아니다”라는 것이 그 이유다. 실제로 안락사는 일부 국가에서만 합법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민감한 문제다. 그러나 2016년 초 우리나라에서도 ‘웰다잉법’이 통과된 후 ‘품위 있는 죽음’,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로 끝난다. 마크 롤랜즈는 “죽음의 방식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이며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끝내도록 허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뿐만 아니라 마크 롤랜즈는 가상의 이야기를 통해 첨예한 경제, 사회, 종교 등의 문제에 관해서도 다양한 철학적 입장과 찬반 논란을 상세히 언급하며 자신의 소신을 밝힌다. 신과 종교에 대해서는 “각자의 신을 믿는 것은 자유다. 그렇다고 해서 윤리학의 의무도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광적인 믿음과 종교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폭력을 경계하고, 마약 등의 금지 약물에 대해서는 불법화와 합법화, 비범죄화에 대해 세부적으로 논하면서 “개인의 행복만큼 자율도 중요하다”라는 진보적인 입장을 밝힌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에서 비롯된 부의 격차와 해소에 대해서도 “계산이 없는 동정심은 맹목적일 수 있다. 그러나 동정심이 없는 계산은 공허하다”라면서 오랜 고민 끝에 깨달은 자신만의 인생철학을 전한다.

내 삶이 나를 증명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살기 바쁜 우리는 인생을 총체적으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생각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각자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마크 롤랜즈는 ‘생각하는 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 초점을 ‘인생’으로 넓힐 것을 권한다. 인생이야말로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이 무한한 가치를 남길 수 있는 빈 원고지이며, 그것을 채우는 것이 인생에 대한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책이든 어디든 우리 삶이 기록되는 순간 무한의 가치를 얻는다고 말한다. “글은 우리 모두가 우리만의 방식으로 ‘나도 여기 있어!’라고 외치는 존재의 방식이다.”

이런 점에서 『굿 라이프』는 하나의 주제에 몰입해 끝까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 고민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중요한 고민을 미루는 사람들에게 왜 생각해야 하는지, 왜 생각을 기록하고 써야 하는지 그 의미를 일깨운다. “최선의 삶은 잊을 수 없는 삶이다. 추한 삶은 서투르고 영감을 주지 않으며 쉽게 잊히는 삶이다.” 따라서 그 반대의 삶, 생각하며 살지 않는 인생은 무의미하며,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대한 책임은 내 삶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영감을 주었는지에 달렸다.

이 책의 제목 “굿 라이프”처럼 마지막에 좋은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마크 롤랜즈는 위대한 업적이나 남다른 성공을 좋은 인생의 기준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책 속으로>


그래서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글을 하나로 모으기로 했다. 모든 것을 전자적인 형태로 옮기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통합했다. 아마 이것이 햇살이 비치고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기억의 산속을 따라 부모와 함께 좀 더 길을 걷는 방법일 것이다. 비록 내가 특별히 윤리적인 철학자는 아니지만, 부모보다 전문 교육은 좀 더 받았으니까. 철학적인 부분에 실수가 있다면 교정하고 어떤 결론이 나올지 전개해봐야겠다. --- p.12

글은 반드시 글일 필요가 없고 기록 매체는 반드시 종이일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은 글이다. 새벽이 장밋빛 손가락으로 내가 속한 세상을 보여주는 세계지도를 어루만질 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는가? --- p.27

글은 우리 모두가 드러나는 방식이다. 휘갈겨 쓴 글은 우리가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글은 우리 모두가 우리만의 방식으로 ‘나도 여기 있어!’라고 외치는 존재의 방식이다. 우리 모두는 말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비록 나는 종이에 쓰인 글에 불과하지만 여전히 당신이 알고자 하는 것보다 더 실재적이다. --- p.29

따라서 도덕적인 선악의 구분을 신에게 의지하더라도 윤리적 추론 과정을 없애지는 못하고 최소한의 돌연변이 형태로 단순히 반복한다. 각자의 신을 믿는 것은 자유다. 그렇다고 해서 윤리학의 의무도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 p.89

니체의 생전에는 출간된 적이 없었던 메모 중에 “삶을 예술과 같이 살아라”는 말이 있다. 위대한 예술이란 모름지기 허용이 아닌 절제이며, 체념이 아닌 균형이다. 아름다운 삶은 움직이고 영감을 주며 역동적이고 다채롭다. 긴장, 갈등, 위기, 용기가 있고 해결책도 있다. 인생에는 승리와 패배, 성취와 고난이 공존한다. 최선의 삶은 잊을 수 없는 삶이다. 추한 삶은 서투르고 영감을 주지 않으며 쉽게 잊히는 삶이다. 로토파고스족의 비극은 그것이 근본적으로 추한 삶이라는 것이다. --- p.161~162

우리의 삶과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들은 계산할 수 없다. 삶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의 삶은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이다. 도덕적 계산이라는 생각을 충분히 확장시켜보면 결국 계산할 수 없는 것과 마주한다. 동정심은 본질적으로 항상 계산할 수 없고 한계도 없다. 계산이 없는 동정심은 맹목적일 수 있다. 그러나 동정심이 없는 계산은 공허하다. --- p.196~197

인생은 규칙으로 규정하기에는 너무나 모호하다.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라’는 일단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너무나 많은 예외를 달게 될 규칙이다. 도끼 살인마가 다가와 도끼가 어디 있냐고 물어보는 중이 아니라면. --- p.208

물론 사랑은 진화와 양립할 수 없다. 사랑은 진화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는 진화의 정신을 위협하는 무언가가 있다. 사랑이 있기 전에 삶은 살아남기 위한 끝없는 투쟁의 장이었다. 이것은 개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근본적인 세상의 열역학법칙을 위한 필요조건이었다. --- p.236

문제의 핵심에는 행복과 자율 사이의 관계가 있다. 그리고 자율과는 항상 불편한 관계에 있는 부모의 역할이 있다. 개인의 행복은 삶을 얼마나 잘 사는지의 문제다. 이것은 삶이 얼마나 흥미롭고 자극이 있는지, 그 사람이 얼마나 행복하게 느끼는지, 고통과 쾌락의 상대적인 양은 어느 정도인지, 삶이 얼마나 살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지 등 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개인의 행복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규정하기란 어렵지만 “행복하세요?”라고 묻듯 평소에 곧잘 던지는 질문에서 이미 다들 노력하고 있었다. --- p.272~274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끝내도록 허용되어야 한다.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교훈이라는 방식으로 삶을 끝낼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도덕성이 나에게 명령한 삶을 끝내는 방식이다. 나는 이 길을 선택했고, 아직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내 선택을 반복해서 말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힘든 선택이다. --- p.297

내 삶에 목적이 있었다면 그것은 ‘사유’다. 증거를 수집하고 거기에 근거해 어떤 영향이 있는지 규명하고, 판단과 직관, 의견과 관점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과 각을 세우는 방식으로 이 세상을 끝낸다면 실망스러울 것이다. 나는 잠시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생각해야 한다. --- p.302~303

이제는 꿈같은 자아가 젊은 날의 빛나는 훈장처럼 느껴진다. 내 속에서 자라는 것은 아직 모호하긴 해도 구분할 수 있는 감각이므로 나는 기묘한 농담의 희생자다. 거울 속에 보이는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이해할 수 있다. 오히려 이 얼굴 뒤에 있는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기억이 문제다. 80년 이상에 걸쳐 축적되었다고 단호하게 주장하는 이 희미해지는 기억은 모두 시공을 지나는 하나의 경로에 속해야 하며,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삶에 속해야 한다. --- p.333~334

그렇다면 당신이 되어버린 이 꿈에서 존재의 깊은 진실은 그 자신을 드러낸다. 당신은 결코 없었다. 있었던 것은 오직 땅뿐이다. 그리고 그 땅은 당신보다 더 비옥하고 다채롭고 아름다우며 혼란스럽고 경이롭다. 
--- p.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