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6-08 17:09
여성의 진화
 글쓴이 : happy
조회 : 31  

[과학책을 만나다 (2)] 여성의 진화 - 과거의 몸으로 현대를 사는 여성들

2017년 06월 07일 15:00

편집자주

요즘 과학책이 대세죠? 인문학 열풍만큼은 아니겠지만, 과학 서적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습니다. 게다가 외국 서적 번역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제 국내 과학작가 작품에 좋은 책이 많더군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저자를 만나서 궁금한 것을  묻고, 어떻게 읽으면 되는지 힌트를 얻어와 독자와 공유하겠습니다. 뭐, 더러는 번역자에게 묻기도 하고, 출판사에게 질문도 할 예정입니다. 많이 공유해주시고, 읽고 싶은 책은 서점에서 구매해주는 것도 잊지 않으셨으면 하네요!

 

[과학책을 만나다 (2)] '여성의 진화' - 과거의 몸으로 현대를 사는 여성들을 위한 가이드 

 

남성과 여성은 다르다. 그 다름이 바로 남과 여를 이어주는 영원한 고리다. 하지만 그 다름 때문에 많은 오해와 분란도 일어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엔 연애에 실패하고 짝을 찾지 못한 남녀의 고민과 우울이 넘쳐난다. 다른 한켠에서는 ‘김치녀’와 ‘한남충’이 갈라져 싸운다.

 

흔히 사람들은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에 대해선 잘 안다고 생각한다. 최근엔 심리와 마음의 측면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이해하고, 간격을 좁히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는 심리도,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도 다르다는 점을 받아들이라는 것은 이제 패션잡지의 연애 상담에도 흔하게 나오는 조언이다.

 

하지만 사람은 전적으로 생물학적 존재이거나, 심리적 존재인 것만은 아니다. 당대의 문화나 사회의 지배를 받지만, 시대를 넘어서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수백만 년의 세월을 가로지르는 진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간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가 가능하다.

 

 

에이도스 제공
에이도스 제공

뉴멕시코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의료인류학을 연구하는 웬다 트레바탄 교수의 저서 ‘여성의 진화 - 몸, 생애사 그리고 건강’ (Ancient Bodies, Modern Lives, 에이도스 출판)은 생리, 임신, 출산, 수유와 양육, 폐경 등 여성이 일생에 걸쳐 겪는 몸의 변화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한다. 초경 시기가 일러지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여러 영장류 중 왜 유독 인간 여성은 폐경 이후에도 오래 사는지, 두발 걷기와 큰 뇌라는 진화적 선택이 출산과 양육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의 주제를 살핀다.

 

이 책은 진화의 관점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다양한 연구 성과들을 충실히 해설한다. 또 남성과 ‘다른 점’에 초점을 맞춰 여성을 설명하는 함정에 곧잘 빠지는 다른 여성 담론과 달리, 온전히 ‘여성’에 집중한다는 점도 미덕이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 여성의 몸은 번식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자연선택의 과정을 거치며 다듬어져 왔다. 그리고 ▲ 약 500만~600만 년 전 홍적세 시기의 환경에 맞춰 진화한 인류의 육체는 최근 급격한 변화의 결과인 ‘현대화된’ 생활 환경에 아직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 과거의 몸, 현대의 삶

 

많은 여성의 건강 문제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이를테면 과거 우리 선조 여성들은 가임 기간의 대부분을 임신과 수유로 보냈다. 임신 및 수유 기간에는 생리가 멈춘다. 그들은 보통 일생에 100~150번 정도 생리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산업화된 현대 국가 - 이른바 ‘건강 부국’ - 의 여성들은 대개 평생 1-2번 임신하고, 수유 기간도 몇 개월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대 여성은 보통 일생 동안 350-400번 생리를 한다. 여성의 몸은 생리를 전후한 주기적 호르몬 변화나 에스트로겐의 홍수를 이토록 자주 견뎌내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건강 부국 여성들은 초경이 더 이르고, 여성 호르몬 수준도 평균적으로 높다. 식생활과 보건 수준의 개선, 사회경제적 조건의 변화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는 인류의 삶의 질이 더 좋아졌음을 뜻한다. 하지만 초경이 이른 여성은 중녀 이후 비만이나 당뇨 발병 확률이 높아지고, 높은 수준의 여성 호르몬에 오래 노출된 여성은 유방암에 걸릴 위험도 높다. 

 

● ‘정상’은 없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건강 부국의 의사들이 건강 부국의 여성을 대상으로 설정한 기준을 ‘정상’으로 간주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를테면 볼리비아 여성의 프로게스테론 수치는 선진국 기준으로는 불임 클리닉에 가야 할 수준이지만, 그들은 문제없이 아이를 낳고 기른다.

오늘날의 분만은 과거 인류가 해온 출산과 다르다. 병원에서 가족이 아닌 의료진들과 함께 한다. 최근에는 가족과 함께 집에서 분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 과학동아 제공

또 ‘진화 의학’의 관점에서 여성의 몸을 바라보면 오늘날 의학이 질병 혹은 문제로 간주하는 것 중 상당수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이를테면 초기 유산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생애 전반에 걸친 번식의 성공이란 측면에서 봤을 때 건강하지 않은 아이를 포기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현대의 의학은 유산, 폐경, 생리전증후군 등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지만, 사실 이는 합리적인 진화적 선택일 수 있다.

 

현대 여성은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기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진화적 본성(?)과 어긋나는 전례 없는 환경적 스트레스를 감내하고 있다. 1만 년 전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할 수는 없겠지만, 진화의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오늘날 우리의 위치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실마리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

이 책은 정신과 전문의이자 신경인류학자인 성안드레아병원 박한선 전문의가 번역했다. 늘 조근조근한 말투로 우리 마음과 정신이 지나온 길을 의학과 진화의 관점에서 살피는 글을 써온 박한선 박사의 세심한 번역으로 읽는 맛을 더했다. 현재 호주 국립대학교 (ANU) 인류학과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 중인 저자 박한선 전문의와 이메일로 책에 대해 물었다.

 

-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 연수 중인 ANU 수업 중에 우연히 이 책에 대해 발표하게 되어 (원치 않게)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소녀 시절부터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삶을 짚어가면서 진화의 역사가 여성의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잘 살핀 책이더라고요. 딸과 여동생, 아내, 어머니 순서로 머리에 떠올리며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 의사라면 여성의 몸에 대해 이미 충분히 알지 않나요? 

▲ 의과대학을 다니며 여성의 신체에 대해 과도할 정도로 공부해야 했지요. 진화인류학도 6년 가까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모르는 것이 많더라고요. 의사는 미시적으로 여성 질환의 진단과 치료를 잘 알고, 인류학자는 성적 불평등의 기원이나 제도 등에 대해 잘 알지만 여성의 ‘진화’ 그 자체를 다룬 책은 별로 없었습니다.

 

- 최근 학계에서 ‘여성’에 대한 담론이 많이 늘어나긴 했지요.

▲ 맞습니다. 그런데 요즘 활발한 여성 관련 담론은 주로 ‘남성과 관련된’ 여성적 측면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성에 비해’ 여성의 공감 능력이 뛰어난 이유, ‘남성에 비해’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이유 같은 것들이죠. 반면 이 책은 ‘여성’에 집중합니다.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어떤 진화적 압력이 여성의 몸과 마음을 빚어왔는지를 다룹니다.
여성의 유방은 남성을 유혹하기 위함이라거나, 여성은 돈 많은 남성을 선호한다거나 하는 진부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 그런 식의 진화심리학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도 했지만, 단편적 인식을 퍼뜨리기도 했죠.

▲ 이 책의 장점이 거기에 있습니다. 읽기 쉽게 잘 쓰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여성과 남성에 대해 불필요한 주장을 늘어놓지 않습니다. 사실 여성 혐오나 남성 혐오의 분위기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남성을 ‘이웃집 살인마’, 여성을 ‘성을 파는 출산기계’로 보려는 인식은 서투른 진화심리학이 남긴 잘못된 유산입니다.

 

- 수백만 년 전 환경에 맞춰 진화된 몸으로 현대를 살아가니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만, 사실 이에 대한 뾰족한 대책은 없는 것 아닙니까?

▲ 그렇습니다. 이 책은 그런 중에도 균형을 잘 잡으려 노력했습니다. 원시 시대로 돌아가자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각성하지 못한 여성을 비난하거나, 죄를 깨닫지 못 하는 남성을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생존과 번식이라는 다윈주의적 압력을 받으며 여성이 겪는 고통과 질병을 있는 그대로 알려줄 뿐이지요.

 

- 여성에 대한 진화적 이해는 페미니즘에도 기여할 수 있을 듯 합니다.

▲ ‘질병’이 아닌데도 ‘입원’하는 대표적 경우가 출산입니다. 의대에서 임신과 출산을 질병으로 간주하지 말라고 배우긴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의료 현실에서 초경, 출산, 폐경 등 거의 모든 여성들이 겪는 ‘남성과 다른’ 신체적, 정신적 현상은 치료되어야 하는 상태 혹은 질병으로 취급됩니다. 웬다 트레바탄은 여성에 대한 치료와 처방에 사회문화적, 진화적 시각을 포함시키면서 ‘페미니즘 의학’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 한세희 기자 hahn@donga.com